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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연구자가, 돈은 DB업체… 저자 두 번 울리는 논문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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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연구자가, 돈은 DB업체… 저자 두 번 울리는 논문 저작권

입력
2018.01.18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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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대부분 학술지로 넘어가

본인이 작성한 논문도

열람하려면 비용 지불해야

수익 DB업체ㆍ학술지 나눠가져

“쓸 때도 돈, 쓰고 나서도 돈”

정작 저자는 한 푼도 못챙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사립대 석사과정인 박모(25)씨는 최근 한 학술 데이터베이스(DB) 사이트에서 학술지에 실린 자신의 논문을 보려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분명 본인이 작성한 논문인데도 따로 돈을 내지 않으면 열람이 불가능했기 때문. 논문을 내는 과정에서 저작권이 학술지로 넘어갔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박씨는 “논문 하나를 쓰려면 돈이 들고 학술지에 게재하려면 또 돈을 내야 한다”라며 “적게는 수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만원이 들어가는데 수익은커녕 저작권 자체도 나에게 없다니 어이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각종 학위 논문 저자들이 저작권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논문을 쓴 뒤 이를 발표하기 위해 각종 유명 학술지 등을 통로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저작권이 학술지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DB에 올린 논문을 열람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등 DB업체가 논문 덕에 수익을 내고 있지만, 정작 논문 저자들은 수익구조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처지다.

이런 상황은 논문 유통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한국학술정보(KISS)나 누리미디어(DBPia) 같은 DB업체를 통해 유통되고,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열람 비용으로 편당 6,000원 정도를 낸다. 이 중 80%를 DB업체가 가져가고, 학술지를 운영하는 학술단체가 나머지 20%를 가져가는 식이다. 정작 저자는 한 푼도 챙기지 못 한다는 얘기다.

한국정보관리학회가 2016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주요 학술지 160종 가운데 ‘디지털 저작권’이 명시된, 즉 인터넷으로 논문을 열람했을 때 저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곳은 14%(13개)에 불과했다. 사회과학 분야는 20종 중 1개(5%)에 그쳤다.

이는 수입이 없거나 적은 대학원생, 시간강사 등에게 아쉽기만 한 부분이다. 1년에도 몇 편씩 논문을 쓰고 그때마다 논문 열람비 등 비용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정작 자신이 일군 결과물로부터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서울 모 사립대 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자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가는 격”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이런 배분 시스템의 문제를 인식하고 저자에게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정경희 한성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상용 DB의 논문 독과점을 저지하기 위해 누구나 논문을 열람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를 통해 출판을 장려, 결국 저자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최근 공공 학술 DB 구축에 뛰어들었지만 지지부진하다. 저자 보호에 나서야 할 학술단체 또한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학술지를 만드는 학회나 단체도 자생력이 없어 연구자들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우창(31)씨는 “민간 DB업체가 전체 지식생태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저자 모두에게 수익을 돌려주자고 하면 결국 논문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일부 연구자는 논문 읽을 기회 자체가 막히는 쪽으로 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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