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출발점은 ‘투기 억제’
올해 아파트 1만5000가구 입주
멸실은 두 배 많은 3만여 가구
매수자의 60%가 강남 거주자
“공급부족부터 해소해야 해결”
“가게에서 지켜보면 집 구하러 온 사람이 투기꾼인지 아니면 마음이 급한 실수요자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실수요가 더 많은데 부총리는 투기세력 때려잡는 대책만 내놓겠다고 한다. 번지 수가 한참 틀렸다.”
1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이 같이 비판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남 4구(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구) 집값 상승 원인은 투기적 수요가 몰리는 게 가장 크다”며 추가 규제를 시사했다. 김 부총리의 이 같은 인식에 시장에선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 적잖다. 최근 강남 집값 상승은 투기 세력 때문이 아니라 실수요에 비해 공급 물량이 부족한 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 등 11개 지역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8ㆍ2 대책 발표 직전인 7월31일부터 올 1월8일까지 22주 동안 2.84% 올랐다. 같은 기간 비투기지역인 나머지 14개구의 아파트값 상승률 1.41% 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 같은 집값 급등세에도 정부는 여전히 올해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서 지난 9일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지금까지 시행한 대책들이 일정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기 세력만 잡으면 집값도 안정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투기세력이 문제’라는 정부 대책의 출발점부터 부정한다. 사실 강남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으로 멸실 가구는 크게 늘어난 반면 공급은 부족한 상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강남4구에선 1만5,542가구의 새 보금자리가 생겨나는 데 반해 재건축 등으로 사라지는 멸실 가구는 이보다 2배 가량 많은 3만3,090가구로 예상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 지역에서 1만7,548가구가 줄어드는 셈이다.
강남4구의 집은 감소하고 있는데도 주민들은 여전히 강남 거주를 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 등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강남 4구에서 성사된 아파트 거래는 2,339건이다. 이중 매수자의 거주지가 강남 4구인 거래가 1,393건(59.6%)으로 집계됐다. 매수자가 강남 4구 외 서울 거주자인 경우는 442건(18.9%), 수도권 주민은 337건(14.4%)이었다. 지방 거주자가 매수자인 아파트 거래는 167건으로 전체의 7.1%에 불과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강남 아파트를 같은 강남 주민이 산 비율도 58.5%(11월)~64.6%(5월) 범위에서 등락을 반복했다. 강남 거주자는 강남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셈이다.
여기에 새로 강남지역 진입을 시도하는 수요까지 더해지며 집값은 치솟고 있다. 정부가 자사고 등 특목고의 신입생 우선 선발권을 폐지하는 교육정책까지 내놓으며 불확실성이 커진 특목고 진학 대신 강남권 명문 일반계 고교로의 학군 수요도 몰리고 있다. 수요는 넘치는 반면 선택지는 대폭 줄어 강남 집값 상승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성권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투기세력을 겨냥한 수요억제책으로는 과열 흐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 문제인 공급부족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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