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는 메달권도 아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 기자단 신년간담회에서 한 자신의 발언으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평화올림픽을 꽃 피울 남북 단일팀 추진에 힘을 보태려고 던진 말이겠지만 가뜩이나 침체된 분위기의 해당 선수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분노를 끓게 만들었다. 대회가 코 앞인 우리 선수단 전체의 사기를 꺾어버린 실언이다. 메달권이 아니면 아무렇게 취급해도 되는 게 스포츠는 아닐 것이다.
그는 또 “단일팀이 우리 선수들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주장인 박종아나 골리인 신소정 등은 북한의 그 누가 온다 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출전 엔트리(22명)의 경계에 있는 선수들에게 그 말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이끄는 새러 머리 감독도 “북한 선수들에게 우리 시스템을 가르치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단일팀이 우리가 부진한 결과를 내는 것에 변명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우려했다.
지난 해 말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는 답변으로 촌철살인의 내공을 보여준 이 총리가 왜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팀 문제에선 잇단 실언의 늪에 빠진 것일까.
정부는 남북 단일팀을 서둘러 추진하며 직접 이해당사자인 선수단과 교감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기사로 관련 소식을 접한 선수들은 두 번 상처를 받았다. 14일 소식을 처음 들었다는 머리 감독이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이라 충격이다”고 토로하는 걸 보며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들의 일처리는 왜 저런 식인지 화가 치밀었다.
남북 단일팀이 평화올림픽의 상징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무리한 추진 과정이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에 선수단은 물론 젊은 세대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자칫 젊은 층에게 남북 협력을 위해서라면 우리가 다 참고 손해를 봐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앞으로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수 많은 일들을 진행해야 할 텐데, 이번 남북 단일팀이 과연 동력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남북 단일팀을 본격 추진하기 전 먼저 선수들을 찾았어야 했다. 평화올림픽의 장밋빛 전망에 취해, 괜히 “피해는 없을 것이다” “전력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란 허언으로 상처를 주는 대신, 진심으로 선수들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평화올림픽을 완성하는 방점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욕심을 부렸다는 사과와 함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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