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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표밭 러스트 벨트서도 “실망” “창피하다”

입력
2018.01.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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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소굴 등 인종차별 발언 무례”

무당파층 지지율 34%로 악화

공화 골수층 지지는 82% 굳건

미국, 극단적인 분열 사회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년 전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로 대통령에 취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미국 중서부 미시간, 오하이오, 위스콘신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이다. 제조업 퇴락으로 촉발된 백인 노동계층의 분노가 전통적으로 강했던 민주당세를 뒤집으며 미 정치 지형의 일대 변화를 몰고 온 태풍의 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20일)을 맞아 11일부터 15일까지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를 돌며 확인한 현지 밑바닥 여론은 다시 들끓고 있었다. 인종주의 발언 논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구설, 미숙한 국정 운영, 무분별한 트윗 등에 일부 지지자들은 실망감을 표출했고 애초 그를 찍지 않았던 이들은 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반면 백인 노동층을 중심으로 한 열성 지지자들은 변함 없는 지지를 보내며 굳건했다. 러스트 벨트 주민들의 현장 목소리를 2회에 걸쳐 싣는다.

한때 자동차 공장의 요람으로 불렸던 위스콘신주 커노샤 시내. 시내 곳곳 건물들이 텅 비어 2010년 크라이슬러 공장 폐쇄 여파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자동차 공장의 요람으로 불렸던 위스콘신주 커노샤 시내. 시내 곳곳 건물들이 텅 비어 2010년 크라이슬러 공장 폐쇄 여파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창피하다” “부끄럽다” 혐오 정서 더욱 강렬

섭씨 영하 10도를 밑돌았던 지난 13일 위스콘신주 커노샤. 크라이슬러 엔진 공장이 2010년 문을 닫은 여파로 쑥대밭이 됐던 지역 경제는 여전히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시내 곳곳 건물에는 ‘부동산 매물’이라는 팻말만 걸린 채 텅텅 비어, 토요일 대낮인데도 거리가 음산했다. 빈 건물 내부엔 깨진 유리창 파편들이 방치돼 있고 강추위에 바깥을 오가는 인적도 드물었다.

한 건물 앞에서 대화를 나누던 50대쯤의 사람들에게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 얘기를 꺼냈다. 누군가가 “트럼프를 찍었다”고 하자, 곧장 “창피하다”는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이는 “아무도 (1주년) 얘기를 안 한다”고 했다. 트럼프 지지자라던 이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로저 밀러’라고 소개한 이가 “그는 바보(idiot)다”며 “대통령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한다는 그는 “세금 감면으로 ‘낙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옛말이고 전혀 효과가 없다”며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커노샤 카운티는 1976년 이래 2012년까지는 민주당 후보를 줄곧 지지했으나 2016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47.2%로 힐러리 클린턴 후보(46.9%)를 눌렀다. 위스콘신주에서 0.8%포인트(2만2,000여표)라는 박빙 차이로 선거인단 10명을 싹쓸이하는 이변을 가능케 했던 현장이었다. 경제 파탄이 오랜 민주당 정서를 꺾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쏠리게 했던 것이다. 밀러씨는 그러나 “다들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하다고 말한다”며 “지역 여론은 다시 뒤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는 그는 의기양양한 듯 보였다.

크라이슬러 공장이 있던 곳. 건물은 헐리고 부지만 철조망에 둘러 쌓여 있다.
크라이슬러 공장이 있던 곳. 건물은 헐리고 부지만 철조망에 둘러 쌓여 있다.

경제 성과 보다 인종주의 발언 등 잦은 구설에 중도층도 실망

이어 인근 샌드위치 가게를 찾았다.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다는 주인 제니퍼 카포니씨는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업가여서 경제를 살리고 국정도 능숙하게 잘 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너무 무례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던 손님들도 이제 대통령 얘기 자체를 서로 안 한다”고 덧붙였다. 카포니씨는 다만 “지역 당국이 외부에서 투자자를 많이 유치하고 있어 경기는 이전 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며 “그게 대통령 때문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간발의 차로 앞선 위스콘신의 우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대만 제조업체인 폭스콘 공장을 유치하는 데 공을 들였고, 지난해 10월 폭스콘이 커노샤 북쪽 러신의 플레즌트마운트 지역을 공장 부지로 발표했다. 하지만 경제적 성과보다 최근 불거진 ‘거지소굴(shithole)’ 발언 논란을 비롯해 갖가지 설화, 인종주의 논란, 동맹국을 포함한 외국 여러 나라들과의 마찰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중도 무당파층의 민심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커노샤에서 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러신에서 만난 예프럼 켈러지안씨는 “부끄럽고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었다는 그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수치’나 마찬가지였다. 중도층이 실망감으로 흔들리고 있다면 애초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했던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혐오감은 더욱 짙고 강렬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트럼프 보다 훨씬 더 크다. 미국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며 “트럼프 없이도 우리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8년 문을 닫은 뒤 10년 가까이 방치돼 있는 제인스빌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
2008년 문을 닫은 뒤 10년 가까이 방치돼 있는 제인스빌의 제너럴모터스(GM) 공장.

커노샤 서쪽,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제인스빌. 공화당의 차세대 대표 주자인 폴 라이언 미 하원 의장의 고향이자 그의 지역구이기도 한 이 곳도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2008년 문을 닫으면서 잘 나가던 지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GM 공장 팻말만 쓸쓸히 남아 있는 빈 공장 인근 마을의 한 카페에 들어서자 은퇴자들이 담소를 나누며 소일하고 있었다. 80대의 롤린 로이스씨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묻자 “인성이 매우 나쁘다”고 혀를 찼다. 또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의견이다”고 말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며 돈만 좇는 현 세태를 개탄했다. 그는 “워싱턴 정치 자체가 돈에 너무 연루돼 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60대 은퇴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나 북한을 터프하게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면서도 “트윗이나 말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지만 그의 언변은 걸린다는 애기다. 그는 마을 여론에 대해선 “50대 50”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 분위기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다소 움츠려 들긴 했지만 지지자들이 아예 돌아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5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만난 트럼프 지지자인 브라이언 페너베커씨도 “주류 언론들의 공격으로 무당파 층에서 지지세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노동자층의 지지는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더욱 강화되는 극단적 지지 분열

실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반 트럼프 정서와 중도층의 실망은 뚜렷하다. 최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취임 당시 45%에서 출발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최하 35%까지 내려갔다가 지난달 말 기준 39%를 기록했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첫해 지지율로선 가장 낮은 수치로 한 해를 마감한 것이다. 특히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1월 13%에서 12월 9%까지 떨어져 혐오 정서의 수위를 보여준다. 무당파층의 지지율도 1월 42%에서 12월 34%로 낮아져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층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의 국정 지지율은 지난 1월 89%에서 12월 82%로 여전히 높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분석한 1년간 여론 변화에서도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투표한 유권자 층에서 국정 지지율 하락은 3%포인트에 불과하다.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모닝컨설트와 폴리티코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1년 국정 평가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의 64%가 낙제점인 F로 평가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의 43%는 가장 우수한 A점을 부여했다. 한 쪽에선 혐오와 실망이 쏟아지지만, 다른 한 쪽에선 어떤 논란에도 꿈적하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세가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시대 들어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이 밑바닥에서 숨 죽인 채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위스콘신=글ㆍ사진 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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