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투약자, 처벌 큰 차이 없자
“돈이라도 벌자” 판매에 손 대
檢 “협조했다고 다 봐주진 않아”
“마약을 파는 사람을 더 세게 처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걔들은 걸리면 마약 구입한 애들을 불어. 그러면 수사에 도움 줬다는 이유로 공적서가 올라가고 감형됩니다.”
필로폰 투약으로 4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한 최모씨는 마약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판매책들이 수사 협조를 이유로 감형되고, 심지어 단순 투약자보다 약한 처벌을 받는 것에 분개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중요한 수사 협조’는 감경 사유가 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마약범죄는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보가 있어야만 적발과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검찰에 협조한 피고인은 공적서(검찰에서 수사 협조를 했다고 판사에게 올리는 협조공문)를 통해 감형되고, 종종 집행유예 처벌을 받기도 한다.
마약 전문가들은 이런 관행이 도리어 마약범죄를 부추기고 예방을 어렵게 한다고 우려한다. 수사에 정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죄질이 안 좋은 판매책을 감형해 주면, 오히려 단순 투약자를 판매책으로 양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단순 투약을 하다 판매까지 손을 댔다는 장모(61)씨는 “마약사범들이 교도소에 모이면 ‘판매책이나 단순 투약자나 처벌에 큰 차이가 없는데, 마약 팔아서 돈이라도 벌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필로폰 판매ㆍ투약 혐의로 기소된 A(51)씨의 경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A씨는 재판 전까지 동종 범죄로 6차례나 처벌받은 적이 있는 상습 판매ㆍ투약자다. 하지만 법원은 ‘중요한 수사에 협조한 점’을 인정했다. 이와 달리 단순 투약 혐의로 기소된 B(49)씨는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판매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지만 상습투약 혐의가 인정돼 지난해 징역 1년을 받았다. “자신이 유통한 마약을 투약한 사람을 제보하고 감형 받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수사기관이 판매책을 주요 정보원(속칭 야당)으로 두고 수사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 범죄 특성 탓에 야당을 통해 상선(우두머리) 정보 등을 수집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게 수사기관 얘기. 그러나 야당이 마약사범들을 대상으로 버젓이 돈을 받고 공적서까지 만들어주는 행태를 조장하고 있단다. 최모씨는 “일반 투약자는 수사에 협조하고 싶어도 아는 게 없어 협조가 어려운데, 이때 수사기관과 결탁한 야당이 접근해 수백만 원을 요구하며 마약사범 정보를 거래하자고 제안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2014년 필로폰 유통업자로부터 사건 무마 청탁 등을 받은 검찰 수사관이 구속되는 등 수사기관과 마약 판매자 간 유착이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에 협조했다고 무작정 봐주는 관행은 없다고 반박한다. 검찰 관계자는 “마약 수사는 처음부터 공급자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밑에서부터 수사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상선 검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예 마약사범들에게 협조를 받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수사를 많이 받았던 마약사범들은 검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어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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