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최저임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꺼번에 16.4%를 인상해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걱정과 함께 저임금 계층의 소득수준을 올려 내수기반을 다지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란 인식이 교차한다.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지나친 자기 확신만 버린다며 걱정과 이해가 동시에 국민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정직한 평가일 것이다.
걱정을 덜어주고자 실시한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의 집행은 아직 시행 초기이긴 하지만 제대로 걱정을 덜기에는 근본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정부 스스로도 한시적 지원이라고 밝혔고 영세 자영업자들은 지원 중단 후 부담해야 할 임금수준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기울고 있다.
최저임금이 계속 올라간다고 전제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줄 수 있는 근본적 지원책은 영세 자영업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돕는 것이다.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못하는 기존의 영세업체들이 매우 많았던 현실을 감안하면 내년부터는 일자리 안정자금대신에 자영업 구조조정 지원 자금으로 집행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3조원의 몇 배 규모가 되겠지만 저임금 일자리를 줄여 자연스럽게 임금인상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 자영업자와 그 사업장에서 일하던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부를 일단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고 재취업 기회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당연히 재정이 더 들고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가 아니라도 중소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에서는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그 상층에 있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도 같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걱정한다.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최저임금을 올린다지만 노동시장 안에서 격차가 줄어들기보다는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임금비용만 확대될 것이란 우려다.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최저임금 인상에 더해 직무가치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밑에서 많이 올리는 대신 위는 최소한도로만 올려서 모두가 평균적 임금수준 근처로 다가오도록 임금분산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그래야 임금격차도 줄이면서 기업의 임금비용을 적정선에서 유지할 수 있다.
그게 가능할까? 상층의 임금인상을 제약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대기업 노조의 양보도 필요하고 노사정 간 사회적 협약도 중요하지만 일회적이거나 이벤트성 조치보다는 임금 인상 기준을 근속연수가 아니라 직무가치와 직무능력 중심으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일단 출발선상에서 하는 일의 가치가 같으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여기에 근속이 어느 정도 직무수행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원칙을 더하면 바로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가 된다.
공공부문부터 호봉제를 버리고 직무급을 도입하고 민간 기업은 정부가 공신력 있게 제공하는 임금분포정보를 기준으로 노사가 공정한 시장임금 수준에 맞추도록 해야 한다. 기업 간 직무를 상세하게 비교 분석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임금정보를 보면 누가 특별히 과소하게 또는 과다하게 임금을 받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원하청 기업간에는 하는 일이 유사하면 임금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도록 공정위원회와 노동부가 협력해서 정책적 견인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공정임금을 구현하는 길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지향해 온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란 정신에도 부합한다.
최저임금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강제적 조정을 하는 것이지만 공정임금은 노사의 자율적 협조를 필요로 한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공정임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정부는 시장 표준임금을 제시하고 민간을 독려하는 한편 정부의 구매 및 조달계획에서부터 적용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임금수준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는 데 대한 비판도 있겠지만 최저임금만 관리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긴다는 편의주의보다는 보편적 개입주의가 더 낫다. 그만큼 우리 노동시장이 공정하지도, 정상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논쟁이 빠져 나올 수 없는 갈등의 덫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진정 걱정하고 있는지 그래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의 고통을 통해 미래의 공동체를 보장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면 그 고통을 얼마든지 분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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