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완전범죄는 없다] 썰물 되자 사람 몸통이... 시신은 억울해 바다로 가지 않았다

입력
2018.01.16 04:40
11면
0 0

#1

“미제사건 될 수도 있겠다”

부검 결과 20~50대 여성

피해자 신원 확인 전혀 못해

“제발 다른 부위가…” 샅샅이 수색

수색 1시간 넘어 마침내 “머리!”

양손ㆍ양발도 찾아내 지문 확보

#2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지목

“아내 귀가 않는데 신고도 안 해”

경찰, 수상한 쇼핑백 덮치자

썩는 냄새… 나머지 팔ㆍ다리 찾아

“도박 추궁에 화 나서… ” 자백

살인ㆍ사체훼손 등 징역 30년 확정

시화호 토막 살인사건 범인 김하일은 자신의 아내를 죽인 뒤, 시신을 14토막 내 머리와 양발, 양손을 시화호 반대편 바닷가에 유기했다. 시흥=이상무 기자
시화호 토막 살인사건 범인 김하일은 자신의 아내를 죽인 뒤, 시신을 14토막 내 머리와 양발, 양손을 시화호 반대편 바닷가에 유기했다. 시흥=이상무 기자

2015년 4월 4일. 자정을 막 넘어갈 때쯤 직장인 A(당시 25)씨가 아버지와 함께 시화호를 찾았다. 경기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12.7㎞ 길이의 방조제가 만든 거대 인공호수. 한때 사람들은 그곳을 ‘죽음의 호수’라 불렀다. 방조제에 갇힌 물은 썩어 나갔고, 고기는 떼로 죽어나갔다. 2000년 정부가 조력발전소를 만들어 하루 두 번 썰물 때에 맞춰 물을 내보내고, 밀물 때에 물을 들여보내기 시작할 때까지, 시화호는 죽어 있었다.

썰물 때면 호수는 바닥을 드러냈다. 그때도 썰물이었다. A씨처럼 사람들은 ‘돌게’를 잡겠다면서 바닥 진창에 발을 들였다. 시화호로 저어새 참매 같은 새들이 날아오고 맹꽁이 같은 보기 힘든 멸종 위기종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돌게를 잡기 시작했다.

“저기 뭐가 있네요. 돼지 같은데?” 오이도 선착장 맞은편에서 손전등을 비추면서 돌게를 찾던 A씨가 소리를 질렀다. ‘살구색을 띠고 있는 둥근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 바닥에 무슨 돼지가 있어.” “저렇게 생긴 게 돼지 말고 뭐가 있어요.” 수상한 물체 쪽으로 조금씩 걸어갔다. 둘은 곧 질겁을 하고,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사람이었는데, 온전하지는 않았다. 몸통만 있었고, 양팔 양다리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경기경찰청과 시흥경찰서에 137명 규모로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 결과를 알려왔다. ▦성별: 여성 ▦나이: 20~50대 추정 ▦혈액형: O형 ▦예리한 도구에 의한 시신 절단. 몸에서는 8㎝ 크기 맹장 수술 자국이, 가슴 부위 23㎝가량 수술 흔적이 발견됐다는 내용도 부검서에 적혀 있었다. 등쪽 요추(허리뼈) 왼쪽 어깨에 뜸 치료 결과로 추정되는 화상 자국도 여럿 있었다. 사망하기 5~6시간 전에 먹었을 것으로 보이는 닭고기와 풋고추 추정 음식물도 나왔다.

먼저 사라진 신체 부위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몸통만으로는 피해자가 누군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100명 가까이 투입돼 시화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가방, 쓰레기봉투 두 장, 장갑 3개가 발견됐다. 수색은 계속됐다. 신원을 드러내줄 수 있는, 단서가 필요했다.

탐문도 동시에 진행됐다. 부검으로 확보한 정보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2015년 1월 1일 이후 집에 들어오지 않은 20~50대 여성들을 찾아, 그들 가족 DNA를 추출해 시신과 하나씩 비교해나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그들 가운데 맹장 수술 경력자가 있는지 재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맹장 수술 흔적이 있으니, 수술 기록을 확인해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피해자가 수술을 받은 추정 시점은 최소 10년 전. 그렇다면 기록 자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범인이 시신을 버리거나 운반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을지 몰랐다. 오이도에서 대부도 쪽으로 나 있는 출입구에 설치된 CCTV 60여대 화면을 확보했다. 반대쪽 방면으로 나 있는 또 다른 출입구에 설치된 CCTV 4대 화면도 분석했다. 시신이 발견된 날(4월 5일)과 전날(4월 4일) 두 출입구를 지나간 차량 1,600여대를 추적했지만 시신을 버리는 모습을 봤다거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는 진술은 하나도 없었다. 보안을 이유로 평소 제공받기 힘든 군 CCTV까지 받아 해안선 위주로 영상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시화호 수색에서 건져낸 종량제 쓰레기봉투(100l) 매듭에서 피해자 DNA가 검출됐다. 시신이 발견된 곳 바로 옆에서 수거한 봉투였다. 버려진 몸통을 애초에 담고 있다가 물에 떠내려오는 과정에서 벗겨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쓰레기봉투를 ‘누가’ 샀는지 알아내면 되는 것 아냐?” 범인과 피해자를 한 번에 알아낼 수 있는 기회라고 수사팀은 봤다. “봉투 출처를 추적해보자.” 하지만 봉투에는 안타깝게 일련번호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 팔린 건지, 알 길이 없다는 뜻이었다.

긴장감과 위기감이 돌았다. “미제 사건 될 수도 있겠다”는 말이 수사팀 내부에서 심심찮게 들렸다. 현장에서 수사 지휘를 맡고 있던 시흥경찰서 최승우 강력1팀장도 애가 타 들어 갔다. 6일 오전 8시21분쯤 수사팀으로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낮에 가발 모형 같은 걸 시화호에서 본 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최 팀장은 믿을만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공개 수사로 전환하면서 하루에만 50통 넘는 제보 전화가 걸려왔지만, 수사에 도움이 될 정보는 전혀 없었다. 신고자는 “시화 방조제 입구 오른쪽에서 ‘본 것 같다’”는 말만 반복했다. “직접 같이 가달라”는 부탁에도 “무섭다”면서 거절했다. 헛힘만 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결국 해당 지점을 기준으로 최 팀장과 직원들이 수색에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밤 9시쯤, 손전등을 쥐고 시화호를 비추면서 찾아 나섰지만 눈에 걸리는 건 없었다. 최 팀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수색 범위를 좌우로 더 넓혀서 찾아보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신고자가 알려준 곳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또 허탕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포기는 쉽지 않았다. 신고자가 말한 ‘가발 모형’이라는 말이 계속 걸렸다.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최 팀장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피해자 머리’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밤 10시10분쯤 최 팀장이 비추던 손전등이 물가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썰물 때라 시화호 바닥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손전등을 멈춘 곳, ‘피해자 머리’가 보였다. 몸통이 발견된 장소에서 오이도 방향으로 3.2㎞ 떨어진 곳이었다. 최 팀장은 부하 직원들을 불렀다. “머리! 머리!”

상태는 다행히 온전했다. 몽타주를 만들고 곧바로 수배 전단을 배포했다. 눈썹문신이 있고, 왼쪽 송곳니에는 치과에서 받은 충치 치료 흔적이 남아 있었다.

머리가 발견된 곳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수색이 다시 시작됐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나머지 신체 부위를 빨리 찾아내야 했습니다.” 최 팀장 얘기다. 다음날 오전 10시20분쯤 기동대원 한 명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왔습니다!” 머리가 발견된 곳에서 대부도 방향으로 80m 정도 떨어진 장소. 해안가 바위 틈 사이로 검은색 봉투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에서 ‘양손’과 ‘양발’이 나왔다. 양손은 지문 채취가 가능할 정도로 거의 훼손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사가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문으로 피해자 신원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안산시에 사는 조선족 한모(당시 41)씨. 2013년 8월 입국하면서 법무부에 지문을 등록해둔 터라 신원 확인은 어렵지 않았다. 한씨는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어머니와 남편이 있다고 적었다. 신고서에 적힌 남편 김하일(당시 47)씨는 2009년 한국으로 먼저 들어와 있었다. 한씨가 사용한 휴대폰도 남편 명의였다.

경찰은 바로 한씨가 미귀가 신고 대상자였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한씨에 대한 미귀가 신고는 접수된 적이 없었다. 최 팀장은 바로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의심이 들었다. “아내가 집에 안 들어왔는데, 신고 안 하는 남편이 어디 있어!”

김씨는 시흥시 정왕동 인근에 살면서 집에서 약 3.5㎞ 떨어진 곳에 있는 건설자재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경찰은 그의 집과 회사 근처에 잠복했다.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아내를 죽이고 시신을 토막 내 유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하루가 지나도록 수상한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출근해 밤새 일하고 아침에 퇴근해 낮에는 잠을 잤다. 8일 오전 10시쯤 그가 움직였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수사팀이 술렁였다. “김하일 나왔습니다. 쇼핑백 하나 들고 나왔습니다.” 경찰은 조심스럽게 따라 붙었다.

집을 나선 지 5분. 김씨가 평범해 보이는 가정집으로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들고 있던 쇼핑백이 안 보입니다.” 추적조는 김씨를 따라 가고, 나머지 수사관들이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1층부터 ‘썩는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건물 옥상으로 향할수록 냄새는 강해졌다. 한씨 시신 나머지 부위인 ‘양팔’과 ‘양다리’가 쇼핑백에 담겨 있었다. 추적조에게 바로 무전이 전달됐다. “김하일 바로 체포해!”

김씨는 경찰서로 가면서 범행을 순순히 시인했다. “돈 벌어오겠다”며 2009년 한국으로 들어와 한씨에게 착실하게 돈을 보내던 김씨는 어느 순간 도박에 빠져 4,000만원 정도를 탕진했다. 한씨가 입국한 것도 다시는 도박을 못하게 관리하겠다는 목적이 컸다. 하지만 김씨는 한씨 몰래 다시 도박에 손을 댔다가 2,000만원을 날렸다.

4월 1일 그날따라 한씨가 눈에 거슬렀다고 했다. “또 도박을 했냐, 은행에 가서 모아 놓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다그치는 한씨 목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화가 나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 이유였다. 2일 집 화장실에서 시신을 칼로 토막 낸 뒤, 몸통은 자전거에 실어 집에서 5㎞ 떨어진 개천에 유기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출근길에 머리와 손발을 마저 버렸다. 몸통은 개천을 따라 시화호로 흘러나와 시화방조제에 걸려 발견됐고, 머리와 손발은 바위 틈에 걸려 썰물과 함께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김하일을 살인, 사체훼손, 사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7월 10일 재판에 넘겨진 김하일은 대법원에서 징역 30년의 확정 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시흥=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