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은 거의 쇠퇴했다고 볼 수 있지만 기업이 왜 이윤을 남기는가를 깔끔한 방정식들로 설명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이론이다.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하며, 기업은 노동이 창조한 가치(값)를 모두 노동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일부를 이윤으로 챙긴다는 것. 이에 대한 수많은 반박과 도전이 있어왔으나, “그게 아니라면 이윤은 왜 생기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은 경제이론은 찾기 어렵다.
낡아빠진 마르크스 경제학이 오늘날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나는 이 이론의 핵심적인 힘은 노동자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는데 있다고 본다. 강남 아파트값이 바벨탑처럼 올라 자자손손 떵떵거릴 부자가 되고, 비트코인으로 앉아서 10억원을 벌고, 임대료 수입으로 월 수백만원씩을 챙기는 이들이 각광 받는 시대. 힘들게 일하고 몇 푼 쥐지도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래도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신들”이라는 말이 위로가 될까. 부동산ㆍ주식ㆍ비트코인 시장의 ‘돈 놓고 돈 먹기 게임’도, 마르크스 이론을 적용하면, 그 판돈의 출처는 자본주의의 역사 동안 노동이 만들어놓은 가치들(이윤ㆍ소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를 모멸하는 자식처럼, 노동이 증식시킨 자본은 노동을 조롱한다. 예전 생업으로 주식투자를 하면서 ‘잘나가는 변호사 정도의 수입’을 자랑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다, 그가 은연 중 어렵게 돈 버는 근로자를 한심하게 여기는 뉘앙스를 내비칠 때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 친구가 “한 달에 고가 골프채를 수없이 만드는 노동자가, 월급으로 그 골프채를 하나도 살수 없대”라고 아이러니를 던져줬을 때처럼.
‘불로소득’이 생의 목표가 된 사회에서, 시급 1,060원 오른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투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보수매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분명 최저임금 인상으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 기업들이 있고 해고되는 노동자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최저임금을 가능한 한 올리지 말자’로 귀결한다면, 우리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는 바보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63.2%(2016년은 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3위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은 장기간 OECD 1ㆍ2위를 기록하다 2015년 4위(23.50%)이며,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 노동자 비율은 14.7%(2013년)로 OECD 중 가장 높다.
최저임금 논란은 우리에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때라고 속삭인다. 사실 너무 늦었다. 최근 한 일간지에 한해 124억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버텼는데 최저임금이 올라서 폐업한다는 기업의 사례가 보도됐다.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 저임금으로 버텨왔다는 이 기업 경영주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연명하도록 하는 게 옳은가. 국내 최고 부유층이 사는 서울 강남 압구정 구현대아파트는 가구당 월 3,750원을 더 내기 싫어 경비원 94명을 모두 해고하기로 결정한 반면, 울산 태화동 리버스위트는 가구당 9,000원을 추가 부담해 경비원들의 최저시급을 맞춰주기로 했다. 백종원씨가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 ‘빽다방’ 본사는 가맹점에 공급하는 바리스타 밀크 등 15개 품목의 가격을 2~17% 인하했다. 최저임금 부담을 나눠 지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다른 대기업들은?
이 선택을 두고 우파, 좌파의 싸움으로 몰지 않았으면 한다. ‘우파의 나라’인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납품단가 등에서 상생이 사회적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이 저임금을 전전하건 말건 자기들 임금 올리기에만 골몰하는 국내 일부 노조는 과연 ‘좌파’인가. 최저임금 문제는 정부의 역할만으로 풀기 어렵다. 각자의 위치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진희 정책사회부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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