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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김정은은 천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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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김정은은 천재일까

입력
2018.01.15 16: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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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로 달라진 트럼프의 김정은 접근

핵무력 완성 선언 후 국면전환 나섰나

北 평창 대표단 태도가 판단의 가늠자

1일 오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김정은. 핵무력 완성 선언 후 그의 국면전환 시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오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김정은. 핵무력 완성 선언 후 그의 국면전환 시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후반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5.3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였는데 며칠 사이 봄 날씨로 변했다.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언행이 그 못지않게 변덕스럽다. 지난 2일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내 핵 버튼은 훨씬 크고 강력하며 잘 작동한다”고 위협했다. 전날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국 전역 타격이 가능한 핵의 단추가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격이다. 그 전에도 ‘리틀 로켓 맨’ ‘병든 강아지’ 등의 언사로 김정은을 비꼬고 윽박지르던 트럼프다.

그런 트럼프의 태도가 열흘도 안돼 확 변했다. 지난 9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남북고위급회담 후부터다. 11일 미국의 보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북한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게 크게 부각되자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라고 말했다는 것은 가짜 뉴스”라고 발을 빼며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한 것”이라고 정정했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최근 두 차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남북대화 100% 지지” “남북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시간 낭비라고 비판한 그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미국 내 정신건강 전문가 70여명이 그의 건강 검진 담당의사에게 서한을 보내 정신 능력에 대한 진단을 요청한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김정은과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트럼프의 정신 상태가 걱정해야 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트럼프는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5년 8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남북한 포격전 등 당시의 한반도 군사적 긴장 상황을 언급하면서 김정은에 대해 “미쳤거나 아니면 천재”라고 촌평했다. 집권 후에도 트럼프의 인식은 그가 미쳤거나 천재일 거라는 틀 속을 오가는 것 같다. 한동안 김정은이 미쳤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던 트럼프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결정 후 달라지고 있는 한반도 상황을 보면서 ”어? 천재인가” 하는 상황인 듯싶다.

김정은은 올 신년사에서 “미국은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호언했다. 핵무력을 완성해 대미 억지력을 충분히 확보했으니 이제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매달리지 않고 대미, 대남 관계에서 새 국면을 열어가기 위한 자락 깔기일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엊그제 러시아 언론사 대표들과 만나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체제 안전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해결했다”며 “소양 있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나는 김정은이 (북핵·미사일을 둘러싼) 이번 판을 이겼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13일 CNN방송에 출연해 “생각해 왔던 것보다도 실제로는 더 많이, 꽤 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김정은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을 평가했다.

우리 사회 보수세력은 기함할 말들이지만 국제사회의 역대급 제재를 자초해온 김정은이 새해 들어 전혀 다른 얼굴로 국제사회에 비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국내에서도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긍정 평가하는 여론이 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이 남한 여론을 상대로도 장사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정은을 천재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앞으로 몇 번의 시험대가 있다. 우선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이다. 여기에는 예술단, 태권도시범단, 참관단 등 올림픽과는 직접 관련 없는 단체들도 있다. 보수진영은 체제 선전, 남남 갈등 유발 등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15일 가장 먼저 예술단 파견 남북실무협상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됐다. 북한 예술단이 체제 선전이나 핵·미사일 개발 미화 소지가 없이 순수한 예술공연을 하고 간다면 북한 정권에 대한 우리 내부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게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김정은은 분명 천재다.

논설고문·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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