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박종부씨 “아버지 계셨으면…”
남영동 대공분실에도 헌화 행렬
31년이 지났지만 흑백 사진 속 커다란 안경을 쓴 스물두 살 앳된 청년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의 옛 지인들은 “올해는 종철이에게 할 말이 있어 다행”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14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서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박 열사는 1987년 1월 14일 새벽 관악구 서울대 인근 하숙집 골목에서 경찰에 강제 연행된 뒤 같은 날 오전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으로 숨졌다.
올해 추모식은 영화 ‘1987’로 높아진 관심을 증명하듯 어느 때보다 추모열기가 뜨거웠다. 유가족을 비롯해 이부영 전 의원, 최환 변호사 등 당시 박 열사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데 애쓴 인사들과 시민 200여명이 함께 고인을 기렸다. 김세균 기념사업회 회장은 “2016년 촛불혁명은 1987년 정신을 일깨우고 박 열사가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 모두의 꿈이 세워지도록 만들었다”고 평했다. 이어 열사의 형 박종부씨는 “아버지가 이 자리에 계신다면 ‘30년 모질게 싸우다 보니 이제 막내한테 덜 미안해 지려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오후 열사가 숨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앞에는 추모를 위한 시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추모식이 끝난 뒤 도착한 박종부씨와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씨도 509호에 놓인 박 열사 영정 앞에 헌화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날 시민 200여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은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의 품으로’라는 청와대 청원이 적힌 노란 조끼를 입고 청원 참여를 독려했다.
앞서 13일 경찰 지휘부와 함께 이곳을 찾은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의 과거 잘못을 성찰하고 새 시대에 맞는 인권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방문했다”고 밝혔다. 경찰 지휘부가 단체로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공식 방문해 박 열사를 추모한 건 처음이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단체가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 청장은 “실정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시민들이 참여해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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