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차이나 패싱’ 우려 커지자
대북압박 수준 탄력 조절할 듯
日 아베는 유럽 6개국 돌며
“대북 제재 수준 높여야” 주장
남북 간 해빙무드가 조성되면서 중국과 일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남북ㆍ북미 긴장 구도를 지렛대 삼아 행사하던 대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한반도 정세에서 ‘차이나 패싱’, ‘저팬 패싱’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다각적인 물밑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14일 베이징(北京) 외교가에 따르면 중국에선 관영매체와 관변학자를 중심으로 ‘차이나 패싱’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 등은 사설을 통해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서 중국이 배제돼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고위소식통은 “중국 정부가 긴장하는 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교감 속에서 김정은과 간접 접촉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정상 주도로 남북대화 및 북미대화가 이뤄질 경우 중국의 역할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압박 수준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갈등 이후 북중 관계 회복 없이는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북중교역의 최대 거점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한 대북소식통은 “단둥에서 철수하는 북한 기업이나 노동자들이 지린(吉林)성 투먼(圖們) 등지에 새로운 거점을 구축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북미 직접대화를 포함해 본격적인 대화 국면이 조성될 경우를 가정해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나름 제재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복잡한 속내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평창 올림픽 불참으로 기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모처럼의 동유럽 순방 외교에서 대북 압박 강화를 주문하고, 일본 언론도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에 회의적인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12일부터 유럽 6개국 순방에 나선 아베 총리는 첫 방문국인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도착하자마자 대북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스토니아 위리라타스 총리와 정상회담 후 “대북 압력을 최대한 높여갈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라타스 총리도 “우리는 방관자로서 있어선 안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아베 총리는 13일 리투아니아 방문에서도 “지구촌 사회의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법치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본 외교’를 표방하며, 취임 이래 전방위적 광폭 외교를 실천해 오고 있다. 2012년 제2차 내각 출범 후 60번이나 외유에 나섰으며, 방문지는 70개 국가ㆍ지역이 넘는다. 당초 중국을 견제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남북 대화 국면이 조성된 이후에는 외교력을 대북 제재 강화에 쏟아 붓는 형국이다.
아베 총리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이후 예정된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순방에서도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 외교가에서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부추겨 남북대화의 급속한 진전을 견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