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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욕설 어쩌나… 언론들 보도 방식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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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욕설 어쩌나… 언론들 보도 방식 고민

입력
2018.01.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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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포장하면 안 돼” vs “아프리카 모욕 재생산”

“새가 알을 낳지 않는 나라” 등 각국 언론 번역도 각양각색

아프리카연합 등 트럼프에 발언 철회ㆍ사과 요구

논란이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어를 그대로 공개해 사용하는 CNN 방송 화면.
논란이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어를 그대로 공개해 사용하는 CNN 방송 화면.

“‘싯홀(Shitholeㆍ거지소굴)’ 같은 단어를 방송에서 쓰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CNN 투나잇’ 진행자 돈 레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아이티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거지소굴’로 지칭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미국 CNN방송은 해방구라도 열린 듯 이 단어를 반복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욕설이나 마찬가지인 단어일지라도 그대로 내보내야 한다는 게 이유다.

CNN뿐 아니라 미국과 전세계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는 ‘싯홀’이란 단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CNN 같은 케이블방송에 비해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가 엄격한 미국 3대 네트워크(ABCㆍCBSㆍNBC)의 경우 표현 사용을 최대한 자제했다. 11일 저녁 CBS와 ABC 뉴스는 표현을 그대로 밝혀 말하지 않았다. NBC는 ‘나이틀리 뉴스’의 진행자 레스터 홀트가 “우리 보도는 시청자들이 (트럼프 발언의) 완전한 인용문을 들을 수 있도록 그 표현을 한 번 사용하고 있다”고 사전에 경고를 한 후 보도를 냈다.

공영 PBS방송은 “S-빈칸(blank)-hole”이라는 표현을 썼다. 공영 라디오방송 NPR도 처음에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12일 아침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그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 이후 표현 사용을 ‘해금’했다. 표준 및 관행 담당 편집위원 마크 메모트는 내부메모를 통해 “청취자들이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한 번은 쓸 필요가 있다. 대신 매우 적게 들려야 한다. 1시간에 1회 정도로 사용되면 충분하다”고 원칙을 정했다. 발언을 최초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일간지의 경우 제목에는 표현을 쓰지 않거나 일부 글자를 가렸지만 기사 내에는 대개 그대로 인용했다.

언론이 트럼프의 막말을 그대로 가져다 써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도 있었다. ABC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는 “표현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ABC뉴스의 정책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실수라고 생각한다”라며 “대통령의 표현을 검열하고 그의 인종주의를 그럴 듯한 생각으로 포장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케이블방송 NY1의 팻 키어먼은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이티인들이 존중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단어를 쓰지 않겠다”면서 “문제의 핵심은 더러운 발언이 아니라 그런 발언을 하는 대통령의 잘못된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다른 나라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번역하는 데 곤란을 겪었다. 한국 언론은 대체로 ‘거지소굴’이란 의미만 통하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일부는 ‘똥통’이라는 더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 일본 공영 NHK방송은 “불결한 나라(不潔な国)“라는 표현을 썼고 BBC 일본어판은 “분뇨 구덩이(肥溜め)”를 사용했다. 중국 언론에선 관영 인민일보 등이 택한 “썩은 나라(烂国)”라는 표현이 많았다.

AFP통신은 가장 우회적인 번역을 내놓은 곳은 대만의 CNA통신이라고 전했다. 이 통신은 “새가 알을 낳지 않는 나라”란 표현을 썼다. 세르비아 매체들은 자국의 관용구를 이용해 “늑대가 짝짓기를 하는 장소”란 표현으로 번역을 하기도 했다. 반면 영어권인데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거친 발언을 자주 보도한 필리핀 언론은 ‘싯홀’을 그대로 사용해 대조를 이뤘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2일 남아공 더반에서 회담하고 있다. 두 국가가 소속된 아프리카연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사과를 요구했다. 더반=로이터 연합뉴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과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2일 남아공 더반에서 회담하고 있다. 두 국가가 소속된 아프리카연합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사과를 요구했다. 더반=로이터 연합뉴스

발언이 알려진 다음날인 12일에도 ‘거지소굴’ 발언을 향한 사과 요구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프리카 5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아프리카연합(AU)의 워싱턴 대표부는 성명을 통해 “표현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하고, 발언 철회와 아프리카인 및 전세계 모든 아프리카인 후손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아프리카 국가 대사 모임인 아프리카그룹도 “미국 대통령의 인종주의적이고 인종 혐오적인 발언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과격하게 말했어도 그런 표현은 쓴 적이 없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딕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일리노이)은 “직접 들었다. 매우 불쾌한 표현이었다”고 말했고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내가 곧바로 반박했다”고 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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