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깊고 외로워서 더 아름다운… 겨울 곰배령을 가다

입력
2018.01.13 18:00
0 0
곰배령 아랫마을에선 겨울철에 설피가 필수다.
곰배령 아랫마을에선 겨울철에 설피가 필수다.

곰배령은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하지만 곰배령은 겨울이 진짜다. 더 깊고 외로워서 눈물 나게 아름답다.

곰배령 아랫마을은 설피마을이다. 눈에 빠지지 않도록 바닥에 대는 넓적한 덧신, 설피가 없으면 다니지 못할 정도로 눈이 많이 쌓이는 곳이다.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진동계곡 골짜기는 끝없이 깊다. 인제 기린면소재지에서 지방도를 따라 30분 넘게 걸린다. 그 골짜기 끝에 곰배령주차장이 자리 잡고 있다. 포장이 되어 있어 봄·여름·가을엔 문제 없지만 눈이 많은 겨울엔 빙판길이다. 두 해 전 이맘때 설피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12월에 두 차례 온 눈의 높이가 2m정도 되어 보였다. 한번 쌓인 눈은 겨울이 다 갈 때까지 잘 녹지 않는다.

쌓인 눈이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있다.
쌓인 눈이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있다.
눈 덮인 설피마을.
눈 덮인 설피마을.
본격적으로 곰배령 등산이 시작되는 강선골마을
본격적으로 곰배령 등산이 시작되는 강선골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장비를 점검했다. 아이젠, 바지에 눈이 들어가지 않도록 발목부터 무릎 아래까지 돌려 감싸는 스패츠, 방한복, 장갑 등이 필수다. 특히 곰배령을 오르는 동안은 물이 없기 때문에 생수를 꼭 챙겨야 한다. 주차장을 지나 입산통제소에서 허가신청을 확인한 후 표찰을 받는다. 빨간 줄에 ‘입산허가증’이라고 적혀 있다 곰배령은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역시 추운 곳이다. 여름이면 청아한 물소리를 내는 그 많던 계곡물이 꽁꽁 얼었다. 통제소에서 20여분 걸어 들어가면 강선골마을이다. 첫 번째 집은 염씨 할아버지댁, 나무로 지은 조그만 집에 노부부가 산다. 부부는 강선골에 45년 정도 사셨다고 한다. 처음 강선골에 들어온 1970년대 초에는 마을에 3가구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15가구가 산다. 여느 농어촌과 달리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강선골도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지붕에는 수십cm의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길에는 사람이 걸어 다닐 만큼만 눈을 치웠다. 겨울 곰배령엔 멧돼지가 많다. 눈 속에서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멧돼지들이 더러 마을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강선골 염씨 할아버지 집에도 언젠가부터 새끼 멧돼지 2마리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 멧돼지가 어여뻐 사료를 줬더니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머물다시피 했단다. 결국 오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혹은 반대로 해코지 당하지는 않을까 싶어 창고에 가두고 사료를 주며 지낸다고 했다. 짐승마저 폭설을 피해 마을로 내려오는 판인데 사람들은 거꾸로 눈을 보기 위해 곰배령으로 오른다.

강선골 마을의 썰매타기?
강선골 마을의 썰매타기?
곰배령 정상 설경
곰배령 정상 설경
겨울 곰배령은 야생화가 피는 계절 못지 않게 아름답다.
겨울 곰배령은 야생화가 피는 계절 못지 않게 아름답다.

강선골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등산이 시작된다. 아무도 걷지 않은 좁은 길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이곳에서 곰배령 정상까지는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길은 대체로 완만해 누구나 걸을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다. 날이 좋으면 곰배령 정상에서 설악산 대청봉까지 보이지만 그날은 시계가 좋지 않았다. 아쉬웠다.

[곰배령 에피소드]꽃은 피고 지는데…망신 당한 여행가이드

처음 곰배령을 간 것은 2001년이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모 일간지 여행 기자가 동행했다. 그때 신문에 크게 나간 후 곰배령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덩달아 곰배령 여행상품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버스 1대 이상 여행객을 모으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가게 되면 자연이 훼손되고, 안전도 문제였다. 지금이야 길이 잘 나있지만 당시에는 차로 가기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곰배령 가이드로 동행한 나에게는 험한 산길에서 여행자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등산로를 이동하며 꽃이 보일 때마다 여행객들이 이름을 물어왔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꽃들이 많이 피어 있던지. 다음날도 마찬가지였고 난 가이드로서 큰 망신을 당했다. 그 부끄러움을 씻기 위해 바로 야생화 도감을 샀다. 치욕을 안겨 준 꽃들이기 때문에 도감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2주 후 곰배령으로 가는 관광버스에서 다른 여행객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는 꽃은 제가 위치부터 이름까지 다 알고 있으니깐 제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등산로 주변에서 전에 보았던 꽃은 거의 다 없어지고 다른 꽃들이 피어 있었다. 피고 지는 꽃들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그날도 망신만 당했다. 그 일을 겪고 3년 동안 내 배낭에는 야생화 도감 3권이 친구처럼 들어 있었다.

곰배령 가는 길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곰배령 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서양양IC로 나와 조침령터널을 통과한 후 418번 지방국도로 이동하면 진동2리 곰배령주차장에 닿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