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스윙키즈’ 등
100억원대 대작 영화 봇물
블랙팬서·어벤져스·앤트맨…
마블도 국내 영화와 맞붙어
2018년 한국영화가 힘차게 달릴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연말 개봉해 해를 넘기며 관객을 만난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강철비’가 동반 흥행하면서 새해 극장가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문을 열었다. 순조로운 출발 덕분에 올해 한국영화를 향한 관객의 기대감도 커졌다.
물론 악재도 있다. 10주년을 맞은 마블 스튜디오의 대대적인 공습이 예고돼 있다. ‘블랙 팬서’가 내달 14일 전초전을 치르고, 마블 히어로가 모조리 출동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4월 말 총공세를 퍼붓는다. 전투의 마무리는 6월 말 ‘앤트맨2’가 맡는다.
관객은 벌써부터 설레고 있지만, 충무로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초 한국영화의 흥행 기세를 죽 이어 갈 수 있을까. 올해 출격 대기 중인 토종 영화들의 전투력을 미리 살펴봤다.
올해도 범죄 영화 일색
흥행 보증 수표로 여겨져 온 범죄 소재 액션ㆍ스릴러 장르는 여전히 강세다. 지난해엔 ‘범죄도시’ ‘청년경찰’ ‘공조’ 등이 500만~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알찬 수확을 거뒀다. 수년 전부터 기획된 범죄 영화는 올해도 쏟아져 나온다.
‘검사외전’으로 2016년 설 극장가를 휩쓴 강동원이 이번 설 연휴에도 등판한다. ‘골든슬럼버’에서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택배기사로 분해 도주극을 펼친다. 일본 소설가 이사카 고타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내달 14일 ‘블랙 팬서’와 동시 개봉이라 어깨가 무겁다.
아시아 최대 마약조직 보스를 잡으려는 이들의 암투를 담은 ‘독전’도 영화 관계자들이 꼽는 기대작이다. 이 영화는 고 김주혁의 유작이기도 하다. 뺑소니 사고 조사반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뺑반’은 현란한 차량추격 액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형사와 인질범의 숨 막히는 대치를 그린 ‘협상’과, 주인공들이 탐정사무소를 차려서 다시 돌아온 ‘탐정2’, 추가 살인을 자백한 살인범과 형사의 심리 스릴러 ‘암수살인’, 주식 브로커의 욕망과 몰락을 그린 ‘돈’ 등 사회성 짙은 범죄 영화들이 연달아 관객을 찾는다.
장르ㆍ소재 쏠림 현상에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을 어떤 전략으로 극복할지가 숙제다. 남자 영화 일색이라는 비판도 돌파해야 한다.
100억원대 대작 영화 홍수
올해 한국영화 중에는 1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 유난히 많다. 태생부터 흥행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다.
고증과 재현에 돈이 드는 시대물은 대부분 제작비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고구려 안시성 전투를 그린 ‘안시성’의 총제작비는 215억원이다.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에 빠진 북한군 로기수의 이야기를 담은 ‘스윙키즈’는 157억원, 197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마약왕의 실화를 그린 ‘마약왕’은 160억원 안팎 제작비를 썼다. 900만 흥행작 ‘관상’을 잇는 ‘역학 3부작’의 마지막 편 ‘명당’과 설 연휴 개봉하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은 제작비 100억원대로 알려졌다.
‘안시성’과 ‘스윙키즈’, 앞서 거론한 ‘독전’은 올해 창사 10주년을 맞는 투자배급사 NEW의 영화다. 130억원을 들인 판타지 영화 ‘염력’과 167억원 제작비가 투입된 ‘창궐’까지 포함해 NEW는 올 한 해 100억원대 대작 영화를 5편 선보일 예정이다. ‘변호인’(2013)과 ‘부산행’(2016)을 이을 NEW의 새로운 1,000만 영화가 탄생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반도 분단 현실을 다룬 액션 블록버스터 ‘공작’과 ‘PMC’는 각각 190억원과 140억원이 투입된 기대작이다.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이 출연하는 ‘공작’은 북핵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다룬다. 하정우와 이선균이 호흡을 맞춘 ‘PMC’는 판문점 지하 벙커 회담장에서 벌어지는 비밀 군사 작전을 박진감 있게 펼쳐 낸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성장 한계에 부딪힌 한국영화가 대작 영화를 통해 시장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연간 관객 2억명에 이르는 안정적 시장을 기반으로 향후 대작 영화 제작 시도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판타지 급부상ㆍ거장의 귀환
판타지 장르의 급부상도 눈에 띈다. 충무로에선 불모지로 여겨진 장르였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다르다. 좀비 영화 ‘부산행’이 개척자로 나선 뒤, 저승세계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한 ‘신과 함께-죄와 벌’이 1,200만 흥행으로 2편 제작비까지 회수하며 판타지 영화의 시장성을 확인했다. 1편보다 더 재미있다고 소문난 2편 ‘신과 함께-인과 연’도 올여름 또 한번 1,000만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한층 다채롭고 흥미로운 소재들이 기대감을 키운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신작 ‘염력’은 하루아침에 초능력을 갖게 된 은행 경비원의 이야기이고, ‘사바하’는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 감독이 새로 선보이는 오컬트 영화다. ‘창궐’에는 밤에만 출몰하는 야귀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밀정’(2016) 김지운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쓴 SF 걸작 ‘인랑’(1999)을 실사영화로 제작 중이다. ‘인랑’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반정부 테러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 경찰조직과 국가 정보기관의 충돌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에서 SF 영화가 만들어지기는 이례적이다.
김지운 감독을 필두로 잇따르는 거장들의 귀환도 반갑다. 이창동 감독은 2010년 ‘시’ 이후 8년 만에 신작 영화 ‘버닝’을 선보인다. ‘동주’(2016)와 ‘박열’(2017)에서 역사 인물을 조명했던 이준익 감독은 오랜만에 현대물로 돌아와 무명 래퍼의 귀향기 ‘변산’을 내놓는다. 젊은 명장들도 신작 준비에 여념이 없다. ‘써니’(2011) 강형철 감독은 ‘스윙키즈’로,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은 ‘마약왕’으로, ‘범죄와의 전쟁’(2011) 윤종빈 감독은 ‘공작’으로 관객을 만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