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ㆍ민주 의원들과 이민문제 회의 중
“거지소굴 같은 나라서 온 사람 왜 받나”
저개발 국가들 향해 또 조롱 섞인 표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아아티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을 겨냥해 “우리가 왜 ‘거지소굴(shithole)’ 같은 나라 사람들이 오도록 받아줘야 하느냐”고 막말을 퍼부었다. 비공개 회의에서 한 발언이긴 하지만, 저개발 국가 국민들을 얕보는 그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공화ㆍ민주당 상·하원의원 6명과 만나 이민문제 해법을 논의하던 중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이날 회동은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 폐기로 추방 위기에 놓인 청년들의 구제 방안과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예산 확보 방안에 합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린지 그레이엄(공화ㆍ사우스캐롤라이나)과 딕 더빈(민주ㆍ일리노이) 상원의원으로부터 양당 합의안 관련 브리핑을 듣던 중, 비자추첨제를 종료하고 5만개 비자 중 일부를 ‘임시보호지위(TPS)’로 미국에 거주 중인 취약 이민자 보호로 돌리기로 했다는 대목에서 벌컥 화를 냈다. TPS는 대규모 자연재해나 내전을 겪은 국가 출신자들에 한해 인도적 차원으로 임시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의 TPS 갱신 중단을 선언하는 등 이 제도의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PS 이민자 보호’ 설명이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2010년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아이티와 아프리카를 지목한 뒤, 문제의 ‘거지소굴(shithole)’ 언급을 했다. 해당 단어는 미국에서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티 이민자들을 이번 대책에서 배제하고 요구한 뒤 “우리가 왜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을 필요로 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그 대신) 미국은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와야 한다”면서 한술 더 뜨기도 했다. 그는 전날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 회담했다.
약소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도 아이티 이민자들을 “모두 에이즈 감염자”라고 불렀고, 나이지리아 출신자들에 대해 “미국을 한 번 보게 된다면 결코 그들의 오두막(hut)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
미 언론과 야권 등에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특히 이민자 출신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사과를 촉구했다. 크웨임 라울(민주ㆍ일리노이) 의원은 부모가 1950년대 아이티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사는 물론, 이민자들도 이 나라 역사에 기여한 사실을 모르는 (대통령에) 부적절한 인물임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비난했다.
모욕 대상이 된 아이티와 아프리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브넬 무아즈 아이티 대통령은 아이티 주재 미국대사를 소환해 설명을 요구했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제기구 아프리카연합(AU)은 “이런 발언은 다양성과 인권, 상호이해라는 국제적인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루퍼트 콜빌 대변인은 “충격적이고 민망한 발언”이라며 “인종주의자란 말 외엔 표현할 도리가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처럼 국내외로 비판이 쏟아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내 표현이 과격하기는 했지만 그런 단어는 쓴 적이 없다”라며 ‘거지소굴’ 발언을 부정하면서도 “과격했던 것은 양당이 제안한 괴상한 이민 법안”이라고 주장하며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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