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실명확인 서비스 무기 연기
기존 가상계좌엔 추가 입금 금지
신규ㆍ추가 투자 막아 ‘원천봉쇄’
김동연 “모든 부처가 규제에 공감”
업계선 “처음엔 된다더니…” 격앙
혼돈의 시장, 비트코인 가격 출렁
가상화폐를 거래할 때 반드시 필요한 ‘가상계좌 실명확인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시중은행들이 늘고 있다. 은행들은 기존 투자자의 가상계좌도 점차 정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신규 투자와 추가 투자가 모두 어려워지는 것인데, 사실상 정부의 속내와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정책의 큰 방향이 가상화폐 거래를 막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자자와 관련 업계는 “4차 산업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이 정부의 무지로 사장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12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신규가입 및 투자 허용 조건인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 도입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당초 오는 19일까지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를 도입하려 했지만 자금세탁문제 등 들여다볼 내용이 많아 일단 연기했고 향후 도입 시기도 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나아가 가상화폐 거래소 3사(빗썸, 코빗, 이야랩스)에 공문을 보내 오는 15일부터 기존 가상계좌 추가 입금도 금지한다고 공지했다. 이런 결정에 일부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신한은행의 계좌와 카드ㆍ적금 등을 해지하자는 글이 SNS 상에 속속 올라, 한때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신한은행 해지’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달 28일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시킨 뒤 은행권에 실명확인시스템을 갖춰 같은 은행 계좌에 한해 실명이 확인된 경우에만 신규 및 추가 투자 등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 재개의 전제가 되는 실명확인 서비스가 무기 연기됨에 따라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가 원천 봉쇄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거래하는 기업은행 관계자는 “계좌 실명확인 도입 시기에 맞춰 시스템 구축을 준비해왔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해 예정대로 진행할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빗썸, 코인원 등의 거래소와 거래하는 농협은행 관계자도 “예정대로 실명확인 서비스를 도입할지 미지수”라고 말을 아꼈다. 우리ㆍKEB하나ㆍKB국민 은행 등은 이미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고 있고, 기존 가상계좌들도 정리한 상태다.
은행들의 몸 사리기는 전날 법무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법안 마련 등에 비친 정부의 강력한 규제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투자자 비판에 청와대가 “부처간 조율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가상화폐 거래에 문제가 많다는 인식엔 부처간 이견이 없는 상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거래소 폐지에 대해선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면서도 “가상화폐 규제 필요성은 모든 부처가 공감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4시 금융위원회는 국민ㆍ기업ㆍ농협ㆍ신한ㆍ하나ㆍ전북 등 6개 시중은행 가상화폐 담당자를 불러 실명확인시스템 관련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지난 10일에는 기재부 주도로 금융위, 여신협회, 카드사 담당자가 모여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 결제 중지를 결정했다. 신용카드로 빚을 내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투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신규든 추가든 가상화폐와 관련된 거래가 어려워지면서 가상화폐 업계는 크게 격앙된 모습이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실명확인이 되면 가상화폐 거래가 되는 것처럼 말했던 정부가 뒤로는 은행들을 내세워 이마저도 봉쇄한 셈”이라며 “300만~400만명의 가상화폐 투자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본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도 비트코인 가격은 오전엔 전일 대비 20% 가까이 떨어졌다 오후에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등 하루 종일 출렁였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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