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은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상화(29)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평창’이라는 두 글자에 유독 힘을 실었다.
이상화가 평창 동계올림픽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1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 여자 500m에서 38초21의 기록으로 가뿐히 우승했다. 경기 뒤 이상화는 “38초55 정도를 예상했다. 국가대표 선발전(38초52)보다 기록이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만족스럽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순위나 전체 기록보다는 그의 초반 100m 기록에 관심이 쏠렸다. 이날 이상화는 10초51을 찍었다. 김관규 용인대 교수는 “이상화가 국내에서 경기하면 100m가 10초5 정도 나온다. 나쁘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상화 역시 “괜찮은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본 무대인 평창에서 강력한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32ㆍ일본)를 넘으려면 초반 100m가 중요하다. 김 교수는 “고다이라는 막판 스퍼트가 강하다. 이상화가 초반 100m에서 최소 0.1초는 벌려놔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상화는 2017~18시즌 월드컵에서 7차례 고다이라와 맞붙어 모두 패했다. 하지만 100m 기록은 딱 한 번 앞선 적이 있다. 지난 해 12월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4차 대회 1차 레이스에서 이상화는 10초26, 고다이라는 10초27이었다. 전체기록은 이상화가 36초71로 고다이라(36초50)에 뒤져 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상화는 이 대회에서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고 고다이라와 격차도 크게 줄이며 자신감을 찾았다.
이날 경기 뒤 인터뷰에서도 어김없이 이상화에겐 고다이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이번 시즌 7번을 ‘그 선수’와 탔고 매번 ‘그 선수’가 내 앞에 있었다”면서도 “비디오를 다시 보며 좀 더 보완하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 선수’보다 한 단계 아래 있는 지금이 다른 올림픽을 준비할 때보다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이상화는 늘 인터뷰에서 고다이라 이름 대신 ‘그 선수’라고 한다.
이상화는 2006년 토리노(5위)에서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뒤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대회를 2연패한 ‘빙속여제’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앞선 세 번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3연패 도전 때문만은 아니다. 장소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을 하는 건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며 “평창이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한다. ‘평창은 내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월드컵 시리즈를 마치고 지난 해 12월 12일 귀국한 뒤 단 4일만 쉬고 다시 담금질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는 물론 1월 1일에도 훈련장을 찾았다.
지난 해 2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부상 중임에도 37초48로 선전했던 이상화는 강릉 경기장이 “나와 잘 맞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예전처럼 두 번의 레이스가 아니라 단 한 번의 레이스로 승부를 내는 방식도 더 좋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폐막일(2월25일)에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는 그는 “밴쿠버 때는 대회 중에, 소치 때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다. 이번에는 폐막일이 생일이라 더욱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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