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이나 언어 문제처럼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없다. 재작년까지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반말을 권하고 다녔다. 그러나 절반은 끝내 그리하지 않았다. 못 하겠다며 거절을 놓는 사람도 있었고, 동의를 하는 순간마저 “네, 그럴게요.”라며 존대하는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반말을 하다가도 다시 만날 때면 존댓말을 하기에, 제발 내게 반말을 해달라고 보채야 할 지경이었다.
나로 치면 예술가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과도 쉽게 서로를 편히 부르곤 했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절한 사회적 관습을 준수하지 않으면 즐거운 나의 삶에 중차대한 위험이 닥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연장자와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에 그의 친구나 동료는 불쾌감이나 당혹감을 가질 수 있고, 개중에는 기어코 나의 버릇을 고쳐주어야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지혜로운 까닭에 그런 점을 일찍 깨달은 모양이다. 연장자가 먼저 반말을 제안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주된 이유는 차후에 압력이 어디에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린 쪽에서 먼저 느끼는 어색함의 근원이다. 휴전선 이남 금수강산에 걸쳐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발딱 선 이상에야, 서로간에 아무리 허물 없이 지낸들 진실로 수평적인 벗이 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 여기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연소자 가운데는 연장자의 존댓말에서 거리감을 느끼고 더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아파트 7층에 사는 중학생은 내가 허리 굽혀 “안녕하세요”라고 할 때마다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면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식당 인형처럼 다시 인사를 해야 하는 곤경에 빠진다.
그렇다면 슬기로웠던 앞선 세대는 어땠을까? 그들은 위계질서를 바꾸고자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했는데, 가령 형-동생 문화도 그렇게 시작됐다. 대학과 감옥을 오갔던 운동권 선배들은 “학교에 돌아오니 누나, 형, 언니, 오빠로 부르는 후배들이 많아져 낯설었다”고 말한다. 대략 90년대 초반부터 이런 풍속이 캠퍼스에 퍼졌다는 이야기다. 인크루트가 70년대부터 2000년대 학번까지 조사한 11년 전 설문 결과에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선배를 ‘형(학형)’이나 ‘선배’라고 부르던 과거와 달리 90년대엔 ‘누나’, ‘오빠’ 호칭이 공존했고, 2000년대부터는 아주 보편화했다. 동시에 각자가 느끼는 선후배 관계의 평등성도 커졌다고 한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에 가족 간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쌍방의 관계를 유사 가족으로 바꾸어 놓았다. 사적인 관계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공적 관계란 나이 외에도 학번, 기수, 직급 등으로 세분된 단단한 위계질서였기에, 이 병영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수의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적 관계가 퍼진 셈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한쪽이 일방적으로 반말을 하고 한쪽은 존댓말을 하는 비대칭 관계다. 서열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개인적 친밀감 속에 숨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보다 더 평등해져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당위나 윤리 때문이 아니라, 신참과 하급자도 동등하게 말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수직적 집단에서 회의를 했을 때 진전이 없었던 경험은 나만 겪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유독 한국어에서만 두드러지는 위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두 해 동안 몇몇 기업이 서로 존댓말을 쓰는 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스로 언어만 고쳐서야 나와 같은 곤경을 겪기 십상일 것이다. 우리는 공적 관계에서 서열 없이 동등했던 경험이 많지 않다. 수평적 시민결합을 이루기 위한 상상에 돛을 달면, 평등한 언어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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