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독자 개헌 발의 의지를 밝히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사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내걸었던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조속히 합의안을 도출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할 수도 있다고 정치권을 압박한 것이다.
이에 정치권이 내놓은 반응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1일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위 대책회의를 열고 문 대통령의 개헌 구상을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개헌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이므로 시기와 방법은 국민적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며 ‘문재인 개헌’ 저지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국민의당 또한 권력구조를 포함하지 않는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의 이런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현재 국민의 70% 이상이 개헌을 염원하고 있고 대통령과 집권 여당도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지도자들 또한 지난 대선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실시를 약속했다. 30년 만에 맞은 절호의 개헌 기회다. 이제 와서 내실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며 개헌을 늦추자는 건 개헌을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87년 개헌은 논의 시작부터 협상 타결까지 3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반면 현 개헌특위는 이미 1년을 허송세월 했고 다시 꾸려진 특위의 앞길도 불투명하다. 개헌은 의지의 문제이지 시간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개헌은 국회가 각계 의견을 수렴해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진행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국회가 당리당략에 매달려 개헌 주도권을 포기한다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치권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한국당은 지방선거 선전에만 집착해 국가 중대사를 그르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정략적 이익을 좇아 스스로의 공약마저 헌신짝처럼 저버린다면,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국민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 2월 말까지 권력구조를 포함한 합의안 도출이 어렵다면, 문 대통령의 제안처럼 지방분권과 기본권 강화 개헌을 우선 추진하고 권력구조 개헌은 미루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개헌 발의권이 있는 문 대통령이 적극적 의지를 보인 만큼 국회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개헌논의에 매달려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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