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 열풍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정부가 결국 ‘거래소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꺼내 들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가 사실상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거래소를 통한 가상 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의 가상화폐 거래소 세무조사에 이어 박 장관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악재를 만난 가상화폐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이날 주요 화폐 거래소 실시간 거래표를 보면 비트코인은 전날 대비 한때 20% 떨어진 1,800만 원대에 거래됐고, 리플, 이더리움 등 대안(알트)코인도 30% 가량 하락하기도 했으나 낙폭을 줄여 반등한 상태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된다면 언제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관련 법안을 이미 마련한 상태다. 박 장관은 이날 “(법무부의 폐지안을) 언제든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며 “관계부처간 협의도 끝났고, 이에 대한 이견도 없다”고 말했다. 보통 정부 입법에 소요되는 기간이 5~7개월 정도임을 감안하면, 법무부가 수일 안에 입안 절차를 밟을 경우 빠르면 올해 말 모든 거래소가 법적으로 금지될 수도 있다. 특히 박 장관은 이러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앞서 ‘중간 단계’ 규제안의 필요성까지 내비쳐 조만간 폐지에 준하는 조치가 나올 수도 있다. 박 장관은 “(거래소 폐지) 입법까지는 시일이 필요하다”며 “중간 단계로서 (가상화폐 거래의) 부작용을 없앨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형법의 도박개장죄 등을 거래소에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 화폐 거래 자체 금지?
박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가 전면 금지되느냐”는 질문에 “개인 대 개인 거래까지 막을 순 없으나 거래소 거래는 규모나 빈도 차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하는 것이지, 거래 자체를 막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설령 정부가 모든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한다고 해도, 거래 과정 대부분이 익명으로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사실상 규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 교수는 “지금까지 가상화폐 거래소는 일종의 에스크로(Escrowㆍ신뢰 관계가 없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중개하는 것) 역할을 해왔다”며 “거래소가 없어져도 개인 대 개인의 거래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앞으로 거래는 어떻게?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가 현실화 되면 앞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거나 개인 대 개인(P2P) 거래를 통해 화폐를 주고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P2P 거래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가상화폐는 구매자가 판매자의 가상지갑에서 받은 특정 값(해시 값)을 자신의 지갑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이런 방식은 구매ㆍ판매자 사이의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실제 돈을 넘김(입금)과 동시에 판매자의 가상화폐가 구매자의 가상지갑으로 옮겨져야(출금) 하는데, P2P 방식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가상화폐를 주지 않고 돈만 ‘먹튀’할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의 거래소 폐지 발언은 ‘규제를 위한 규제’에 불과하다”며 “거래소 폐지로 인한 부작용이 잇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금융실명제, 가상화폐 구입 상한선 지정 등 간접 규제 방식으로 가상화폐 거품을 잡을 수 있다고 본다”며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규제에 목표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논란이 커지자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박상기 법무장관의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나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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