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디자인센터에 무슨 일이
1년 계약직 영어특기자 3명
정규직 기대 속 ‘열정 페이’ 버텨
장관ㆍ시장 표창까지 받았지만
센터 “근무성적 낮다” 내세워
계약 만료 하루 전에 종료 통보
“실컷 부려먹다 해고” 반발 입막음
“지난해 12월 20일이었요. 휴가 신청을 했더니, 팀장이 큰소리로 ‘휴가를 가면 정규직 전환이 안 될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더라구요. 그땐 설마설마했죠. 그런데 그게 정말이더라구요.”
광주시 출연기관인 광주디자인센터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일해온 A(26)씨는 계약기간 만료 하루 전인 지난 3일 디자인센터로부터 4일자로 근로계약이 종료된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고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성공 개최(9월 8일~10월 23일)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광주시장 표창까지 받았지만 디자인센터 측은 계약 종료 사유를 ‘2017년도 채용 신규 직원의 평가 종합 결과’라고 밝힐 뿐이었다. 디자인비엔날레 당시 과중한 업무로 건강이 나빠져 병원 치료를 위해 연차 휴가를 냈던 A씨는 “이곳을 평생 직장이라 여기고 1년간 성심껏 일했는데, 근무성적 평가 결과도 모른 채 억울하게 해고를 당했다”고 참담해했다.
광주디자인센터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고용 정책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평정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한 근무성적 평가가 객관적이었는지 증거로 소명하라는 디자인센터 원장의 뒤늦은 요구를 둘러싸고 내홍에 빠져들고 있다. 노조가 원장을 향해 “자신이 결재한 근무평정 결과를 스스로 부인하며 되레 중간 평정자들의 과오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집안싸움이 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센터는 지난해 1월 5일 A씨 등 5명과 1년 기간의 계약직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전시와 홍보, 행사, 마케팅 분야에서 일할 영어(3명)와 중국어(1명), 일본어(1명) 특기자로 채용된 이들 계약직 근로자들은 근무성적 평가를 거친 후 정규직 근로자 전환을 위해 마련된 고용형태였고, A씨 등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했다. 디자인센터는 지난해 12월 중순 A씨 등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정규직들에게 지급되는 복지카드 예산(1인 당 130만원)도 확보했다.
그러나 디자인센터는 지난해 12월 20~22일 근무성적 평가를 실시한 뒤 계약기간 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 3일 A씨 등 영어특기자 3명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근무성적 평가 점수가 정규직 채용 기준인 80점을 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센터는 A씨 등에게 평가 점수도 공개하지 않고 평가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알리지 않았다.
A씨 등은 “디자인센터가 실컷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나가라고 한다. 자의적인 평가로 무능력자라는 주홍글씨를 씌워 내쫓았다”고 즉각 반발했다. A씨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운영 때문에 작년 8~11월 주말도 없이 새벽까지 야근을 밥 먹듯 했고, 정규직도 버거워 하는 500평 규모의 전시관 2개를 혼자서 운영하면서도 통ㆍ번역과 의전, 계약 예산 업무까지 맡는 등 정규직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며 “다른 곳에 취업할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박봉(150만원)을 받으며 디자인비엔날레 성공만을 위해 열정을 바쳤는데 그 보상이 해고로 돌아왔다”고 억울해했다.
또 다른 영어특기자 B(27)씨도 “디자인비엔날레 관련 사업 예산을 20~30%씩 절감하고 연관 업무도 성실히 수행해 행정안전부장관과 광주시장으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는데 근무성적이 양호하지 않다는 게 말이 되냐”며 “도대체 평가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 등은 “계약 종료 통보는 사실상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항의를 계속 이어갔다. 그러자 디자인센터의 한 간부는 “가족이나 외부에 이런 사실을 알리지 마라. 평정자가 다친다”고 압력성 입막음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참다 못한 A씨 등은 8일 “평가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디자인센터 원장은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중간 관리자들의 평가가 객관적이었는지 증거로 소명하도록 했다. 하지만 노조는 “원장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노조는 “원장이 출근도 하지 않고 직원 근무 평정 결과에 대한 최종 결재문을 비서에게 전자결재 처리하도록 해놓고 이에 와서 그 평가 결과를 스스로 뒤집어 중간 평정자들의 잘못으로 몰아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원장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팀장들에게 근무평가 권한을 줬는데 의도와 달리 평가가 평가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되면서 정성평가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며 “개선방안을 찾고 내가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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