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청을 설립하라
박상익 지음
유유 발행ㆍ152쪽ㆍ9,000원
우리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다. 한글의 과학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럴듯한 한글 콘텐츠가 없다. 요즘엔 해외 저널에 실리는 논문의 몸값이 더 높다 보니, 한국에 대한 최첨단 연구성과를 보려면 영어 논문을 봐야 한다는 게 ‘웃픈’ 현실이다. 존 밀턴 연구자로 이름 있는 박상익 우석대 교수가 “영어로 된 글 다 읽을 줄 아는 데 번역하는데 왜 돈 들이냐”는 기획재정부 논리에 분개한, 짧은 팸플릿이다. 글이라기보다 피울음이라 해도 좋다. 선진국은 연구번역, 그러니까 충실한 해제까지 곁들인 번역을 해도 석ㆍ박사 학위를 준다. ‘제대로 소화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만 해도 번역 대국이다. 번역을 냉대하는 우리는, 들뢰즈의 주저 ‘안티 오이디푸스’를 10년 작업 끝에 번역한 철학자 김재인에게 인세 330만원을 주는 게 전부다. 한글전용 논란 따윈 사실 사치다. 한글로 읽을 게 없다. 그게 한글날 빼고 “1년 364일 한글을 홀대”하는 나라의 맨 얼굴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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