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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고독해 봐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

입력
2018.01.11 13:5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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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하루도 혼자 있지 못할까.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해리스는 저서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에서 모든 것이 이어진 초연결사회 속에서 자기 회복의 한 방법으로 혼자 있기를 제안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왜 하루도 혼자 있지 못할까.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해리스는 저서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에서 모든 것이 이어진 초연결사회 속에서 자기 회복의 한 방법으로 혼자 있기를 제안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마이클 해리스 지음ㆍ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발행ㆍ328쪽ㆍ1만4,500원

197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현재에 완전히 집중할까. 잡생각, ‘멍 때리기’, 몽상에 빠지지 않고 현재에 온전히 몰입하는 건 어느 때 가능할까. 그가 ‘플로(flow)’라고 명명한 이 상태는 불행히도, 일할 때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일의 종류는 상관 없었다. 중요한 건 적당한 난이도를 가진 뭔가를 한다는 것.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를 갖기 어렵다는, 묘하게 근대적인 결론으로 기운다. 생을 시간의 합이라고 할 때 혼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해리스의 저서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는 이에 반박하는 ‘혼자 있기 사용설명서’다. 모든 것이 이어진 초연결사회에서 그는 ‘혼자 있기’를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 싸움은 놀랍게도 혼자 해야 한다. “정부의 노력으로 숲과 대양이 보존된다 하더라도 홀로 있기의 실험은 개인적인 것이므로, 그것을 보존하려는 투쟁도 대부분 개인의 몫이다. (…) 우리의 온라인 군중은 너무나 끈질긴 존재이며 어디에든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홀로 있음의 영역에 접근하는 세력을 적극적으로 밀어내거나, 그것들에게 우리의 정신적 지형의 큰 몫을 떼어줄 것처럼 속여야 한다.”

저자는 왜 고독의 투사가 되었을까. 그를 매료시킨 건 헝가리 의사 이디스 본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화된 부다페스트에서 스파이 누명을 쓴 그는 7년 간의 수감 생활을 겪으며 추위와 기아, 곰팡이, 고립에 맞서 온전하게 정신을 지켜냈다. “강제로 텅 비워진 내면”에 건설된 세계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그 순간에도, 저자는 혼자 있기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끄러워한다. “나는 나만의 시간은 더 많이 원했지만 정작 그럴 시간이 주어지면 왠지 떨떠름하게 여겼다. 이것은 다루어 볼만한 문제였다. (…) 어떻게 하면 홀로 있을까. 그리고 왜 홀로 있어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기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홀로 있음으로 바꿔줄, 텅 빈 나날을 비어 있는 화폭으로 바꿔줄 어떤 훈련 또는 연금술이 있을 것이다.”

초연결사회에선 영화, 책, 음식을 고르는 데도 남의 목소리가 개입한다. 마이클 해리스는 혼자 심미적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연결사회에선 영화, 책, 음식을 고르는 데도 남의 목소리가 개입한다. 마이클 해리스는 혼자 심미적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혼자 있기 사용설명서’는 ‘고독의 연금술서’가 된다. 책은 구글 지도를 보는 일부터 영화 평점을 살피는 것, 베스트셀러에 손이 가는 현상까지 우리의 삶에 속속들이 박힌 남의 목소리를 들추어낸다. 소파에서 친구와 쉬고 있던 저자는 영화를 보기로 결정한다. 한 사람이 문득 떠오른 영화 제목을 대면 다른 사람이 자연스럽게 아이튠스로 검색해 별점을 확인한다. 별점 둘. 다른 영화로 넘어간다. 그 동안 배달음식점 인기 상위목록에 속한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검색의 천재’들이 골라준 음악을 듣는다.

이 취향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는 이를 “허가 받은 문화적 잡탕죽”을 받아 먹는 삶이라고 부르며 “자연스러운 취향 같은 것은 절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아마 이것이 엘리트주의를 치료할 방법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비평의 지형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심미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또 다른 무엇인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려준다.”

별점과 좋아요와 리트윗을 벗어난 세계에는 뭐가 있을까. 그곳엔 “헐 벗은 자아”가 있다. 저자는 이것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대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자아의 실체”를 인식한 뒤에야 우리는 세상과 다시금 연대할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 나’를 찾아나서는 저자의 뒷모습은 단호하면서도 순진하다. 사회적 산물을 빨아들였다 뱉어내는 스폰지 같은 자신과 마주하는 데는 불과 몇 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독의 연금술서는 어쩌면 치유의 수많은 판타지 중 하나다. 자아의 존재여부는 마치 종교처럼,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 때가 많다. “타인이 지켜보든 말든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야 한다. 그것은 얼마나 근사한가.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가! 내가 내 살갗에 내려앉은 시대정신만은 아닌 존재임을 알게 되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가.”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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