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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권기옥(1.11)

입력
2018.01.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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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 파일럿이자 전투기 조종사 권기옥(가운데). 국가보훈처
한국 최초 여성 파일럿이자 전투기 조종사 권기옥(가운데). 국가보훈처

한국 최초 여성 파일럿 권기옥(1901.1.11~1988.4.19)이 중국 윈난항공학교를 졸업하고 중화민국 항공처 부비행사 임명장을 받은 게 1926년 4월이었다. 2차대전 유럽서 ‘밤의 마녀들(Nachthexen)’이라 불리며 동부전선 나치들을 공포에 떨게 한 소련 공군 제588야간폭격연대는 연대장부터 조종사, 정비공까지 부대원 전원이 여성이었다. 해방 후 49년 10월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됐지만, 공군사관학교는 1997년(49기)에야 여성 생도 입학을 허용했고,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배출된 건 2002년 9월이었다.

권기옥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11세에 은단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었고, 12세에 교회 부설 소학교에 입학했다. 숭의여학교 재학 중 일제 치하 여성 비밀독립운동단체인 ‘송죽회’에 가입, 군자금 모금이나 무기 운반, 폭탄 제조 등 독립운동 후방 지원 업무를 시작했고, 3.1운동 땐 태극기를 만들고 애국가 가사를 등사했다고 한다. 그는 만세 시위 가담 혐의로 일경에 체포돼 구금된 것을 비롯, 크고 작은 일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고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16세이던 1917년 5월 서울 여의도비행장에서 본 미국 곡예비행단의 비행 모습을 본 뒤, 비행사의 꿈을 품었다는 그는 20년 상하이로 밀항, 3년 뒤 중국 윈난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다. 중국 군벌이 세운 4개의 비행학교 중 두 곳에서 여성 입학을 거부했고, 쑨원의 광둥항공학교에는 비행기가 한 대도 없었다는 이야기, 조선 독립운동에 우호적이던 군벌 당계요(唐繼堯)가 임정 추천서를 들고 찾아온 권기옥의 당찬 모습에 탄복해 입학을 허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빼어난 성적으로 파일럿이 됐지만, 그에겐 꿈을 이룰 비행기가 없었다. 그는 중국 비행학교 교관으로 제자들을 양성했고, 독립군이 아닌 중국군 즉 국민당 정부의 항공대원으로서 상하이전투 등에 전투기를 몰고 참전해 일본군과 싸웠고, 중국 청년들의 공군 입대를 독려하는 선전비행에 나서기도 했다. 39년 임정 산하 여성조직인 대한애국부인회 재건에도 앞장섰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43년부터 해방 전까지 그는 한국 광복군 비행대 편성 및 작전계획을 짰고, 해방 후에는 한국 공군 창설을 도왔다.

28년 결혼한 독립운동가 이상정(시인 이상화의 형)과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던 그는 재산을 장학사업에 기탁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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