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 맥도넬 한국어로 트위터
한글로 ‘베이비, 사랑해요’ 작사
영미권 힙스터, 예지 노래 열광
BBC선 “한국어 가사 황홀” 극찬
미 라디오 진행자 BTS 소개하며
“한국어로 들을 때 울림 크다”
K팝, 문화 외교사절 역할 톡톡
영화 ‘다크 섀도우’, ‘원 헌드레드’ 시리즈에 출연한 미국 배우 토머스 맥도넬(32)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한글 전시장’이다. “면접 망햇어”부터 “이거 실화냐?” 같은 최신 유행어까지 등장한다. 맞춤법을 가끔 틀리긴 하지만, 꽤 유창한 한국어다. “한국에는 꽃샘 추위가 있고 미국에는 인디언 썸머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써 올린 적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 할리우드 배우는 어떻게 한글에 빠진 걸까. 계기는 K팝이었다. 맥도넬은 최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브라질 팬에게서 K팝을 소개받은 뒤 K팝에 빠져 한국어까지 공부하게 됐다”고 했다. 한국어 뉴스, K팝 가사 등을 활용해 한글을 독학하면서 한글의 모양과 발음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가 요즘 가장 즐겨 듣는 K팝은 선미의 ‘가시나’다. 한글 전도사가 된 그는 한국어 노래 작사에도 나섰다. 얼마 전부터 만들고 있는 노래 제목은 ‘베이비, 사랑해요’다.
영미권의 ‘힙스터’들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DJ 예지의 노래 속 한국어에 열광한다. 전자 음악에 섞인 한국어 발음이 신비롭게 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예지의 ‘내가 마신 음료수’ 뮤직비디오가 올라온 유튜브에는 후렴구인 “그게 아니야”를 영어로 표기한 “KU-GE-A-NI-YA”가 줄줄이 달렸다. 영국 BBC는 예지를 ‘올해의 주목할만한 아티스트(사운드 오브 2018)’로 꼽았다. BBC는 “예지가 영어와 한국어 가사를 섞어 황홀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고 평했다. 한국어가 영어보다 운율을 살리기 어렵고 발음도 딱딱해 ‘음악적 맛’이 덜하다는, 국내 일부 창작자들의 푸념과는 정반대의 평가다.
한국 가수가 외국에 진출하면 현지어로 가사를 번역해 부르는 게 보통이었지만, 요즘은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재크 생 쇼’에 방탄소년단이 출연했을 때의 한 장면. 진행자인 재크 생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미국 무대에서) 한국어로 노래해 달라”고 했다. 그는 “방탄소년단 노래에 담긴 청춘의 고통은 국적과 상관 없는 보편적 경험이며, 한국어로 들을 때 그 울림이 커진다”는 취지에서 한 얘기였다.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미각(美脚ㆍ예쁜다리) 그룹’이라 불린 것을 비롯해 과거 K팝 아이돌 그룹이 외모, 춤 같은 외형적 요소를 중심으로 소비된 것과 달라진 풍경이다. 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10일 “해외 팬과 평단이 K팝을 단순 볼거리가 아닌, 읽고 듣는 콘텐츠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단 얘기”라고 분석했다.
K팝 한류 덕에 해외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은 2007년 3개국 13곳에서 지난해 54개국 171곳으로 늘어났다. 수강생 1만 2,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조사에서 대중문화에서 출발한 한국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답한 수강생이 20.4%에 달했다. K팝이 문화 외교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박혜인 인턴기자(중앙대 국제정치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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