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분위기 속 폭소 터져
WP 특파원 “백악관과도 달라…
75분 진행 놀랍다” 트윗 하기도
‘댓글 폭탄’엔 “예민해하지 말라”
문재인 대통령의 10일 신년 기자회견은 중간중간 폭소가 터지는 등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통령이 즉석에서 질문자를 직접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질문권을 받기 위한 이색경쟁이 불을 뿜었다. ‘백악관 스타일’이라는 청와대 설명과 달리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외신기자들은 “백악관과 달리 청와대가 질문을 사전에 선택하지 않았다”는 의외의 관전평을 내놓았다.
첫 질문부터 발언권을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사회를 맡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질문하십시오”라는 말이 떨어지지가 무섭게 회견장에 자리한 200여명 기자들 상당수가 일제히 손을 번쩍 들어 순간 ‘와’하는 감탄사가 터지기도 했다. 치열한 열기에 문 대통령이 오히려 누구를 지명해야 할지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윤 수석은 질의응답에 앞서 “전례 없는 기자회견 방식”이라며 “대통령이 손으로 기자를 가리키고 눈을 마지막으로 맞춘 기자가 질문하시면 된다. ‘나도 눈 마주쳤다’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기자들의 양심을 믿겠다”고 혼란 가능성을 대비했다.
기자들은 문 대통령과 눈을 맞추려 안간힘을 썼다. 한 기자는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인형을 들어 질문권을 얻었다. 두 손을 모두 들거나 종이와 수첩을 흔들기도 했다. “보라색 옷을 입고 온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저랑 눈 마주친 것 맞죠, 대통령님”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지명한 기자가 아닌 옆 자리 기자가 어부지리로 질문 기회를 얻기도 했다.
외신기자들도 두루 질문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일본 언론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특파원은 지명을 받자 유창한 한국말로 “대통령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한 뒤 “지금부터 영어로 하겠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기자회견이 75분이나 진행되고 있어 놀랍다”며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소감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사전에 짜여진 내용 없이 질문을 하고 있다. 이는 백악관과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간간이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질문 내용을 되묻는 등 여유를 잃지 않았다. 기자 한 명당 하나의 질문만 해야 한다는 규칙을 상기시키며 “질문을 하나만 선택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경제 성장률 전망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답변권을 넘기기도 했다. ‘청와대 및 2기 내각 구성의 방향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윤 수석이 “저도 궁금한 질문”이라며 거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질문이 뜻밖이다”라며 “아직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문제에 대한 질문”이라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열성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 관련 기사에 다는 ‘댓글 폭탄’을 두고서도 질의응답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비판적 기사를 쓰며 격한 표현과 함께 안 좋은 댓글이 달린다. 지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와 생각이 같든 다르든 국민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인다. 기자들도 담담하게 생각하고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견장에서는 회견을 전후로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긴장을 풀자는 뜻에서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기자회견에 어울린다는 뜻에서 김동률의 ‘출발’과 가야만 하는 길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가자는 뜻에서 윤도현의 ‘길’이 선곡됐다. 제이레빗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그곳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번 기자회견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기획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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