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인근서 안내·통역 봉사
동네 구석구석 알고 지식도 많아
“한국 인상 내게 달렸다 생각
덩달아 자존감도 높아졌죠”
“이 노란 조끼만 입으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느낌이에요. 우리 동네, 우리나라 첫인상이 내 말에 달려 있는 거니까.”
5일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만난 김경현(59)씨는 유창한 영어로 외국인 길 안내에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21일 발대식을 가진 송파구 ‘위 캔(WE CAN) 봉사단’ 일원이다. 조인숙(53) 잠실3동장 제안으로 만들어진 위 캔 봉사단은 14세부터 74세까지 약 100여명으로 구성된 통역 봉사단으로, 민간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비예산 사업이다. 이들은 서울 잠실역과 롯데월드, 석촌호수 일대 등 ‘잠실관광특구’를 돌면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영어와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 20명이 55세 이상인 시니어 단원이다. 이날은 김경현씨 외에 박규섭(70), 김예은(64)씨 부부와 나훈(63)씨 등 시니어 단원들이 함께 위 캔 봉사단 로고가 새겨진 노란색 단복을 입고 통역에 나섰다.
노인차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요즘이지만 이들은 나이 한 살 더 먹는 새해가 반갑기만 하다고 한다.
김경현씨는 “나이 들수록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자원봉사를 해내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익숙해진 삶의 조건에 안주할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의욕적으로 새해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박규섭씨는 최근 새로운 영어 학습 과정에 등록했다. 2003년 육군 대령 예편 후 취미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박씨는 “객관적으로 통역 봉사할 만큼 유창한 영어 실력은 아닐지 몰라도 단복을 입고 나오면 나도 모르게 용감해진다”며 “노란 조끼가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강사를 했던 아내 김예은씨는 일본어 능통자다.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2016년 은퇴한 나훈씨는 해외 업무 경험이 풍부해 영어에 자신감이 있지만 봉사단 활동을 계기로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집에서 매일 미국 CNN TV 채널을 틀어 두니 가족들이 싫어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위 캔 봉사단을 기획한 조 동장은 “우리나라가 주민등록인구 통계로는 이미 지난해 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노년층의 연륜과 경험, 재능을 활용해 이들을 대우 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창단 동기를 설명했다.
이날 이들 시니어 단원의 안내를 받은 미국인 펠리시아 킴(28)씨는 “젊은 가이드들이 다소 소극적이고 소심하게 안내해 주는 것과 달리 시니어 가이드들은 훨씬 적극적으로 안내해 줘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조 동장은 “우리 동네를 찾은 관광객을 우리 동네 시니어가 안내함으로써 지역 발전을 가져온다는 취지에 대한 공감도가 높다”며 “노인이 차별 대상이 아닌 존중 받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할 기회를 넓히는 차원에서 앞으로 봉사단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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