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과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던
비핵화 대화 거론에 뒤늦게 불만
개성공단 가동 등 ‘3대 압박카드’
꺼내지 않아 후속회담에 긍정적
이도훈 한반도본부장 오늘 방미
회담 결과 설명 후 후속조치 논의
이산상봉 적십자회담도 북 응답 기다려
정부가 9일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넘어 이산가족 상봉을 거론하고 군사당국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후속회담이 주목된다. 북한이 비핵화 발언에 뒤늦게 불만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크게 판을 흔들지 않고 나름 성과를 내면서 양측이 이미 상당한 교감을 나눈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측 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오전 회담을 마친 뒤 “비핵화 등 평화정착을 위한 재개가 필요하다는 우리 측 입장에 대해 북측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경청했다”고 전했다. 과거 우리 측이 ‘비핵화’라고 운을 떼기만 해도 북측 대표단이 얼굴을 붉히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다만 북한은 리선권 수석대표가 오후 회담에서 비핵화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기존 입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이날 회담에서 남북 간 가장 껄끄러운 이슈인 개성공단 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5ㆍ24조치 해제의 ‘3대 압박카드’를 꺼내지 않은 점도 고무적이다. 이들 3가지 사안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직결된 것이어서 우리가 당장 응하기 어렵고, 결국 북한이 시비를 거는 순간 모처럼 달아오른 남북 간 대화국면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남북은 이날 합의에 포함된 군사분계선(MDL) 상의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군사당국회담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제안한 이후 6개월 만에 회담에 응한 것이다. 북한은 2016년 2월 이후 전면 중단된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이날 회담에 앞서 3일 개통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는 성의를 보였다. 북한은 군사당국회담에 대해 줄곧 “민족통일의 대통로를 열어젖히자”고 주장하며 정치ㆍ군사 분야를 우선적인 의제로 다루길 원했지만 기선 제압 차원에서 우리 측의 군사회담 제안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남북 군사회담이 열리면 2014년 10월 당시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과 김영철 북한 국방위 서기실 책임참사 겸 정찰총국장이 만난 이후 3년 3개월 만이다.
이와 달리 우리측이 제의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에 대해 북측은 아직까지 응답이 없는 상태다. 특히 이번 설은 2월 16일이라 같은 달 9일 개막하는 평창올림픽 기간에 포함돼 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이어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까지 이뤄지면 남북간 ‘더블 이벤트’가 열려 한반도 해빙 분위기는 배가 될 것이다. 다만 설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남북 적십자회담은 2015년 9월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이후 2년 4개월간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이미 남북 당국회담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0일 미국을 방문해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후속조치를 논의하는 한편, 16일(현지시간)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캐나다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참전국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해 국제사회를 상대로 이번 회담에 대한 외교적ㆍ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거론될 전망이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이후에 전개될 상황이 마치 잘 짠 각본 같다”고 말했다.
판문점=공동취재단ㆍ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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