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술자료 요구ㆍ유용 행위 심사지침 개정
중소기업 A사는 수년간의 노력 끝에 핵심기술을 개발한 직후, 납품처인 대기업 B사로부터 해당 기술에 대한 공동 특허출원을 요구 받았다. B사가 “거절하면 거래를 지속할 수 없다”고 압박하자, A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동 특허출원에 응했다.
앞으로는 이처럼 대기업이 특별한 기여 없이 협력 중소기업의 특허에 이름을 같이 올리는 ‘특허 무임승차’ 행위가 금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ㆍ유용 행위 심사지침’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13일부터 시행한다고 9일 밝혔다.
심사지침은 현행 하도급법상 기술탈취에 해당되는 세부 행위 유형 등을 상세하게 규정한 법 집행 ‘가이드라인’이다. 이번 개정은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과 공정위가 공동 발표한 ‘기술유용행위 근절대책’의 후속 조치다.
먼저 공정위는 심사지침상 기술탈취 행위 유형에 ‘공동특허 요구행위’를 신설했다. 협력 중소기업이 자체 개발한 기술에 대기업이 특허권, 실용신안권 등을 공동으로 출원하도록 요구하는 행위가 하도급법 위반이란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간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자금이나 기술지원 없이 하청사의 기술에 공동 특허출원을 요구하고, 거절 시 거래를 끊어버리는 신종 ‘갑질’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하도급법으로도 이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나, 원사업자나 하도급 업체 모두 특허 무임승차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아 지침을 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 매년 실시하는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의 조사항목에 공동특허 요구행위를 추가하기로 했다. 올해 ‘기술유용 집중감시업종’인 기계ㆍ자동차 부문 현장조사 때도 이 같은 행위를 집중 점검하고 위반 업체는 엄정 조치하기로 했다. 집중감시 대상은 2019년엔 전기전자ㆍ화학, 2020년엔 소프트웨어 분야 등이다.
아울러 심사지침의 기술자료 범주에는 소프트웨어, 신약 개발 등 신산업 분야가 추가됐다. 기술자료는 ‘수급사업자의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는 정보ㆍ자료’를 의미하며, 하도급법은 이를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앞으로 원사업자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소스코드(프로그램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담은 정보)나 테스트 방법을, 의약ㆍ의료용품의 경우 임상시험 계획서ㆍ방법 등을 하도급 업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해선 안 된다.
성경제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혁신 분야의 기술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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