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북’ 펴서 전략ㆍ대상 결정
암호카드 ‘비스킷’ 대통령 증명
사령부 항명 가능하나 힘들어
핵탄두 800여개 몇 분 내 발사
“나에게도 핵 단추가 있다. 훨씬 크고, 강력하고, 실제로 작동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적었다. 전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 연설에서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한 응수였다. 단추 크기에 집착하며 자존심 싸움을 벌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셜미디어는 조소를 보냈지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 800여개를 몇 분 안에 발사할 권한이 있는 세계 유일 인물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 그대로 ‘누르면 핵 미사일이 발사되는’ 단추는 없다. 대신 ‘뉴클리어 풋볼’이라 불리는 핵 가방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일 때마다 수행원 1명이 이 가방을 들고 동반하기에 어디서든 핵 발사 명령이 가능하다.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6,800개, 이 가운데 실전 배치된 탄두는 1,800개다. 민간단체인 미 군축협회는 대통령이 명령을 내리면 몇 분 안에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가 800여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결심하고 가방을 열면 안에는 미리 준비된 핵전쟁 전략과 대상 등이 표시된 ‘블랙 북’이 있다. 대통령은 책을 검토하고 공격 전략을 선택한 후, 국방부 전시상황실로 명령을 내린다. 대통령은 핵 발사 명령을 내리는 자신이 대통령임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작은 플라스틱 암호 카드 ‘비스킷’도 가지고 다니는데, 이 암호를 국방부로 전송하면 비로소 핵 공격 절차가 개시된다.
이것만으로도 즉시 핵무기가 발사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 2명이 핵무기 발사 명령을 확인하라는 ‘2인 규칙’ 때문이다. 명령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부통령ㆍ국방장관ㆍ국무장관 중 최소 1인은 대통령의 명령을 인증해야 한다. 다만 명령권 자체는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부통령 등이 이를 거부할 수는 없다. 이들이나 핵탄두 발사를 담당하는 미군 전략사령부에서 명령의 적합성을 검토 후 항명할 수는 있지만 전례가 없다. 항명한 하급자가 어떤 책임을 지는지도 알 수 없다. 다소 시간만 걸릴 뿐 트럼프가 세상에서 가장 위력적인 핵 단추를 쥐고 있다는 엄포는 결국 사실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가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그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었다. 상원 외교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11월 ‘핵무기 사용 명령 권한’ 청문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물론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 등 반(反) 트럼프 성향 공화당 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갑자기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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