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많이 가는데 수익은 찔끔
소규모 슈퍼ㆍ편의점에서 기피
‘봉투 찾아 3만리’ 지친 주민들
파는 곳 공유하고 사재기 나서
판매강제 못해 지자체도 골머리
서울 동작구 주부 이정민(37)씨는 8일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집 밖을 1시간 가까이 배회했다. 쓰레기봉투를 사기 위해서다. 이씨가 집 근처 편의점과 슈퍼마켓 3, 4곳을 찾아갔지만 돌아온 답은 “안 팔아요”였다. 결국 이씨는 집에서 걸어 20분 떨어진 중형 마트에 가서야 쓰레기봉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씨가 원하는 10l 짜리는 모두 팔려 울며 겨자 먹기로 20l짜리 한 묶음을 사올 수 밖에 없었다. 이씨는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게 해놓고는 이렇게 사기 힘들어서야 되겠냐”고 언성을 높였다.
동네 소규모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쓰레기봉투가 사실상 사라졌다. 일상과 가장 밀접한 소모품 중 하나인 쓰레기봉투를 이제는 필요할 때 바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쓰레기봉투를 구하기 못해 제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시민들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쓰레기봉투는 1995년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시민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쓰레기 양에 맞는 ‘규격 봉투’에 담아 버리지 않으면 쓰레기를 수거해 가지 않기 때문. 그런데 쓰레기봉투 판매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현재 쓰레기봉투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판매를 원한다고 자발적으로 신청한 가게들이 판매하고 있다.
문제는 쓰레기봉투를 팔려는 소규모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쓰레기봉투를 판매해도 남는 이익이 적고,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노원구에서 3년째 99㎡ 남짓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52)씨는 지난해부터 쓰레기봉투를 팔지 않기로 했다. 박씨는 “쓰레기봉투를 100원어치 팔면 3원도 안 남는다. 다른 제품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제각각 낱장으로 달라는 손님들 요구를 다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원하는 크기가 없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아서 손해 보는 장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시민들은 ‘쓰레기봉투 찾아 3만리’에 지쳐 관련 정보를 수집해 ‘사재기’를 하기도 한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직장인 박우영(32)씨는 자주 가는 중형 마트 직원에게 쓰레기봉투가 들어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한다. 박씨는 “직장을 다니다 보니 쓰레기봉투를 항상 준비해 두지 않으면 집에 쓰레기가 쌓이는 일이 많다”라며 “집 근처 편의점에서 팔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사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사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지역 주민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쓰레기봉투를 살 수 있는 마트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지자체도 골머리 앓긴 마찬가지. 당장 판매를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상인들이 원하는 이문에 맞춰 쓰레기봉투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시민들 민원이 많은 건 사실”이라며 “판매 신청을 하고도 제대로 팔지 않고 있는 가게들을 단속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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