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무명 선수서 홍콩의 히딩크로
각급 대표 사령탑 선임 변화 예고
“선수 경력이 국가대표 감독 선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판곤(49) 대한축구협회 초대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의 취임 일성이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는 지난 해 말 대한축구협회가 조직 개편을 하며 신설한 기구다. 김 위원장은 올림픽이나 국가대표 사령탑을 뽑는 위원회의 수장인 동시에 한국 축구의 장기적 로드맵을 짜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그의 취임과 함께 앞으로 각급 국가대표 사령탑 선임 기준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사실 한국 축구에서는 선수 시절 ‘이름값’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지도자 선정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하지만 김판곤 위원장은 그 자신부터가 철저한 ‘무명 선수’ 출신이다.
그는 “선수시절 아무 인연도 없던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가 지난 해 11월 제안을 해 고민 끝에 수락했다”고 밝혔다. 홍 전무는 김 위원장과 달리 한국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다. 1969년생 김 위원장은 신태용 국가대표 감독과는 동기지만 둘 역시도 별로 친분이 없다. 한국 프로축구가 낳은 전설 중 하나인 신 감독과 달리 김 위원장은 프로경력도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한 축구인은 “김판곤 위원장이 측면 수비수였는데 기술 좋은 신 감독에게 매번 당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도자로 변신해 외국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쌓았다. 그는 2009년 아시아의 변방인 홍콩대표팀을 맡아 2010년 동아시안컵 4강,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16강 등의 성적을 내 홍콩 팬들로부터 ‘홍콩의 히딩크’라 불렸다. 2012년부터는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겸임하며 홍콩 축구의 백년대계를 주도했다.
김 위원장은 “지도자를 찾을 때 선수 경험이 좋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팀을 맡아 어떤 수행 능력을 보였는지, 또 결과가 좋다 해도 그게 단지 뛰어난 선수 덕인지 아니면 지도자 능력인지 두루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의 한국행을 가족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도 털어놨다. 실력보다 이름값을 중시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을 가족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이름도 없고 빛도 못 보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꿈꾸는 젊은 지도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자리를 맡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서도 ‘제2의 김판곤’ 같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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