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박(어차피 광주시 경제부시장은 박병규)이다.”
지난해 12월 15일 광주시가 공석인 경제부시장 공모를 마감한 직후부터 시청 안팎에서 회자되던 말이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기아자동차 노조 광주지부장 출신으로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장을 지낸 박병규 일자리정책특별보좌관(5급 상당)을 이미 경제부시장으로 찍었다는 얘기였다. 이른바 사전내정설이다. 희한하게도 당시 이 주장에 토를 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과장한다면, “1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지난 5일 현실이 됐다. 이를 두고 한 직원은 “같은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다음 일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민선 6기 내내 사전내정설을 고질병처럼 달고 다녔던 윤 시장의 인사 루틴(판에 박힌 수작)을 꼬집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윤 시장은 이례적으로 입장문까지 내고 박 특보를 경제부시장으로 내정한 데 대해 “광주형 일자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특보는 적정임금의 일자리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자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간 경제부시장엔 국비예산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획재정부 출신 고위공직자나 중앙 부처ㆍ정치권에 줄을 댈 수 있는 인사들을 앉혔던 관례로 보면 박 특보를 경제부시장으로 내정한 건 파격이다. 윤 시장은 이를 두고 “노조위원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사람을 행정 안으로 들이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까지 자평했다.
‘혁명적이라….’ A4 용지 2장 분량의 입장문을 훑어보던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간부는 “공무원들을 타도와 전복의 대상으로 본 것이냐”며 발끈했다. 윤 시장은 대체 무슨 의도로 상식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말을 했을까. 혁명의 사전적 의미(고려대 한국어사전)를 접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했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 이 뜻풀이로 본다면 윤 시장은 ‘비합법적인 방법(사전내정)’으로 박 특보를 경제부시장으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공직사회 내부 평가는 냉소적이다. “졸지에 5급 부하 직원을 1급 상관으로 모시게 됐다”, “노동운동가 출신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 주류였다. 물론 “6개월짜리 경제부시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공모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비겁하게 무슨 말이냐”는 반론도 없지 않다. 여기까지는 인사 뒤끝에 으레 있는 뒷말이려니 할 수 있다.
주목되는 것은 공작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이번 인사가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광주형 일자리’를 상징하는 박 내정자를 포석으로 재선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파다하다. 이미 시청 안에선 조만간 광주형 일자리를 적용한 기업 유치가 발표만 남겨 두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 경우 일자리 창출 효과의 공을 박 내정자에게 돌려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것은 물론 윤 시장의 재선 가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 시장의 진짜 속내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잡음이 새어 나오는 것 자체가 윤 시장이 6ㆍ13지방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해 조급해 하고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윤 시장은 박 특보를 경제부시장으로 내정한 걸 혁명이라고 할 게 아니라 임기 내내 “영혼도, 철학도 없는 인사를 한다”는 비판을 들은 데 대해 겸허히 반성부터 해야 한다. 사족 하나. 윤 시장의 혁명 발언에 대해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자칭 ‘시민시장’이라는 윤 시장은 도대체 어떤 광주시장으로 시민들에게 기억되길 바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