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제는 붐업이 아니라 과속이 걱정될 지경”이라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낸 듯한 표정이었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이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북핵 위기로 전쟁 기운이 고조되며 일부 국가에선 보이콧까지 검토했던 대회다. 국정농단의 여파로 국내 대기업의 지원조차 독려할 수 없다 보니 흥행은 물 건너 간 게 아닌가 우려가 컸다. 평창 대회가 극적으로 분위기가 바뀐 건 북한이 참가하겠단 의사를 표명하면서부터다. 평창을 짓눌렀던 전쟁의 불안감이 사라지자, 되레 평창을 통해 경색된 동아시아 위기의 해법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부에선 북한의 김여정과 미국의 이방카 트럼프가 평창에서 조우하는 건 아닌가 들뜬 전망도 내놓는다. 이젠 평창으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자칫 쭉정이 대회가 될뻔한 평창올림픽이 어쩌면 최고의 흥행 동계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평창의 변화가 워낙 극적이다 보니 올림픽의 마법을 경험하는 듯하다. 그리스의 고대 올림픽과, 현대 올림픽의 핵심을 이룬 평화의 메시지가 무력하지 않음이 실감된다.
올림픽 제전과 함께 찾아온 평화를 그리스인들은 ‘신의 평화’라 불렀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부터 약 1,000년 동안 진행돼온 축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의 궁벽한 땅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펼쳐진 화려한 구경거리는 지중해 전역에 뻗어나간 그리스 시민들을 유혹했다. 수백 명의 선수와 수만 명의 관중은 올림픽 휴전 덕에 4년마다 열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그 먼 올림피아까지 찾아갔다. 아테네에서 올림피아까지는 300km가 넘는 거리다. 지금의 스페인과 시칠리아, 아프리카의 그리스 식민지에서도 육로와 해로를 통해 수 만 명이 몰려들었다. 제우스 신전 앞에서 벌어지는 닷새간의 행사 때문이다.
올림픽 기간에는 각지에서 여행하는 참가자들의 신변안전이 보장됐다. 모든 참가자들이 제우스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이 기간 올림피아로 가는 여행객을 공격했을 때 이들은 신성모독의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됐다.
아무리 큰 구경거리라지만 8월의 뙤약볕 아래 올림피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그들이 수십 일의 뱃길과 걷기를 마다하며 고행의 순례길을 자청해 떠났던 건 평화의 이벤트를 즐기는 나름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도시국가 간 끊임없는 분쟁으로 전쟁이 일상이던 그 시기, 전쟁 없는 평화를 만끽하는 행진이었고, 앞으로의 평화를 기원하는 걸음이었을 것이다.
북핵 위기와 스트롱맨들의 강대 강 대결 속 꽁꽁 얼어붙은 동아시아 정세에서 평창을 계기로 화해를 모색할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동토를 비집고 솟아오른 풀 한 포기처럼 평창이 해빙의 전령사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평창의 성공은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미래에서 올림픽의 역할을 보다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극히 순진한 바람일 수 있겠지만 3,000년을 이어 온 올림픽의 기본 정신에 기대보려 한다. 인간은 선할 수 있고, 인간은 폭력을 절제할 수 있고, 인간은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지금의 우리들도 모두 동일한 열정과 열망으로 올림픽을 공유하고 있다. 올림픽이 고대와 현대를 잇는 독특한 연결고리인 셈이다.
한달 뒤 평창올림픽이 개막되면 우린 평화 대회를 연 자부심을 가지고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의 원초적 몸짓을 주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선수들과 함께 긴장하고 함께 행복할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고대 올림픽 선수들과는 달리 방한복으로 꽁꽁 몸을 감싼 선수들이지만 그들의 화려한 비상과 질주에서 우린 몸의 아름다움을 넘어 본연의 인간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신의 평화를 노래했던 올림피아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이성원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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