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회의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경비원 94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에서도 강남, 강남에서도 대표적 부자 동네인 압구정동 얘기다. 대표회의가 밝힌 해고 추진 이유는 ‘경비업무 관리의 어려움’과 ‘최저임금 인상 등 비용 문제’다. 최저임금 급등에 비판적인 쪽에서는 무리한 정책이 오히려 서민 일자리를 빼앗고 말았다며 정부 정책을 비난한다. 반면 ‘부자 동네’에서 사소한 비용 부담 증가를 빌미로 경비원을 해고하는 건 너무 야박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당장 해당 아파트 3,000세대 중 1,000세대는 반대 서명에 나섰다고 한다. 한 주민은 대자보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를 경비원 급여는 월 30만원으로 가구당 월 3,570원을 더 내는 정도의 부담이 어렵지는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자보엔 또 대표회의의 해고 뒤 용역 전환 방침에 대해서도 “용역 전환은 고용 불안과 해고 위험을 뜻한다”며 “주민을 위해 일해 온 경비원들에게 고용 불안과 해고로 보답하고 싶지는 않다”고 호소했다.
이번 해고 방침이 단순한 비용 문제 때문만이라고 보기 힘든 정황도 있다.경비원들은 지난해 휴식시간 근무에 대한 수당지급 등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대표회의는 지난해 10월 경비운영 방식을 직접 고용에서 용역업체를 통한 위탁 고용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그러자 경비원들은 단지 내 주차장이 좁아 필요했던 ‘대리주차’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맞섰다. 대표회의가 ‘경비업무 관리의 어려움’이라고 밝힌, 경비원 노조와의 갈등이 있었던 셈이다.
저임금 경비 근로자를 충분히 배려할 만한 부자 동네 아파트 대표회의가 거리낌 없이 드러낸 야박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고용자에겐 비용과 관리이고, 피고용자에겐 임금과 처우가 달린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일방의 ‘선의와 배려’만을 요구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이번 사건에 얽힌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앞으로 다른 아파트는 물론, 전 산업현장에도 비슷한 상황을 빚을 가능성이 커서 ‘연착륙 대책’이 한결 절실해졌다. 한시적 최저임금 지원책이나, 적용 감독, 최저임금 인상에 편승한 부당 가격인상 감시 등의 대책만으로는 미흡하다. 정부는 5일 최저임금 TF 회의를 통해 “관련 추가 대책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고 했다. 노ㆍ사 모두의 현실을 고려한 실효적 대책이 강구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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