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제약업체에 광물로 대금 지급 제안
국가 경제 붕괴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몇몇 해외 제약업체에 약품 대금을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과 광물로 지불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보건부는 최근 해외 제약업체에 약 50억달러(5조3,140억원)에 이르는 체납 대급을 다이아몬드와 금, 콜탄으로 지급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문의했다. 콜탄은 스마트폰이나 비디오 게임기 등을 제작하는 데 쓰이는 희소 광물이다.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초인플레이션으로 볼리바르화(貨)의 가치가 2017년 한해만 97% 폭락했고 파산 위기에 처한 정부는 화폐를 더 이상 인쇄할 능력이 없다. 이미 베네수엘라 병원은 항생제나 고혈압ㆍ당뇨 치료제 등의 공급이 끊겨 저장고가 거의 바닥난 상태다.
하지만 국제 제약업체들은 떨떠름한 반응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베네수엘라의 광물 품질이 보증되지도 않을뿐더러 정부가 이미 수 차례 지불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제약산업회의소 티토 로페스 대표는 “1년 넘게 정부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약품 공급이 안 되는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대금 지불이 보장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한 기업 대표는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며 금을 받는 데는 동의했으나 역시 지불 확약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경제 컨설턴트 오를란도 오초아는 “있지도 않은 현물을 언급해 지불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려는 허세 같다”고 비판했다.
중앙정부 마저 물물교환에 나서는 베네수엘라에서 시민들의 물물교환은 이미 일상이다. 이 신문은 수도 카라카스 시내에 마치 2차대전 직후 헝가리, 2001년 아르헨티나처럼 물물교환 시장이 서고 있다고 전했다. 카라카스 동쪽 슬럼가 페타레에 거주하는 제빵업자 노르비스 브라초(25)는 페이스북과 왓츠앱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이 가진 설탕과 옥수수 가루 사진을 올려놓고 콩과 혈압약을 구했다. 브라초는 “우린 매일을 이렇게 보낸다. 빵부터 컴퓨터 부품까지 모든 게 물물거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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