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은 무공을 세운 장수에게 사인검(四寅劍)을 하사했다. 12지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칼을 만들면 네 마리 호랑이가 외적의 침입과 악귀(惡鬼)를 막아 준다고 믿었다. 칼의 형태를 지닌 부적인 셈이다. 칠성(七星) 신앙과 도교의 영향이다. 귀신을 두려워했던 연산군은 말년에 200자루의 사인검 제작을 명하기도 했다. 왕실에서 만드는 사인검에는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됐다. 좌도(左道)라는 유학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인검 제작은 조선왕조 500년간 계속 이어졌다.
▦ 전두환 대통령은 군부를 각별히 챙겼다. 혹시 모를 군의 모반을 막고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 일반 공무원보다 높은 호봉과 의전예우 기준을 적용했다. 지휘봉이 주어지던 장군(준장) 진급자에게 1983년부터 삼정도(三精刀)라는 칼을 직접 줬다. 육ㆍ해ㆍ공 3군이 일치해 호국 통일 번영의 세 가지 정신을 이뤄내라는 뜻을 담았단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외날인 삼정도가 서양식 칼과 비슷해 한국군 장군을 상징하는데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자 조선시대 사인검을 본떠 양날 형태의 삼정검(三精劍)으로 바꿨다.
▦ 길이 100㎝, 무게 2.5㎏인 삼정검은 100% 수제품으로 시가 500만원이 넘는다. 피나무에 상어가죽을 입힌 칼집에는 대통령 휘장과 무궁화가 조각돼 있다. 특수강으로 만든 칼날 한 면에는 ‘산천의 악한 것을 베어내 바르게 하라’는 뜻의 글이, 다른 한 면에는 이순신 장군 명언인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가 새겨져 있다. 삼정검 수여와 동시에 도검소지 허가증이 발급돼 전역 후에도 가보처럼 소지할 수 있다. 대통령도 퇴임 직전 국방부 장관에게서 삼정검을 받는다. 김영삼 대통령 이후 관행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준장으로 진급한 장군 77명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해 삼정검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을 통해 전달했다. 군 통수권자가 아닌 장관이 대신 주니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장군의 명예와 긍지의 상징인 삼정검을 직접 주는 뜻은 분명하다. 국가 안위를 책임지는 군인의 본분을 다하라는 것이다. 군심(軍心)을 배려한 문 대통령의 깊은 뜻을 헤아려 과도한 장성 수와 지나친 예우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등 군 개혁에도 솔선수범하기 바란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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