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상수동 카페골목을 찾았다. 2년 전 작업실이 있어 몇 개월 머문 곳인데도 풍경이 낯설었다. 드문드문 비어있던 가게 사이로 새로운 가게가 입점했고, 어둡던 골목은 밝게 빛났다. 몇몇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술가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홍대에서 밀려와 자리 잡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저렴한 지역에 모여 동네를 꾸미고, 활동을 시작할 때면 자본가들이 들어와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이들을 쫓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근래에 인상 깊었던 말은 “시세차익 다다익선!”이다. 서촌 궁중족발의 건물주가 자신의 SNS에 올린 말이다. 어떤 연예인의 건물 재테크 성공담이 떠올랐다. 강남 가로수길에 건물이 있고, 시세는 얼마고, 건물 재테크를 통해 얼마를 벌었는지, 공개될 때마다 사람들은 투자능력에 감탄했다. 그 연예인은 매입한 건물을 5년 만에 매물로 내놓았고, 42억 원의 차익을 얻었다. 수익률은 323%. 연예인의 투자 안목은 미덕처럼 다뤄졌다.
몇 년 전부터 서촌은 지자체의 도시재생 사업과 자본 유입으로 주목됐다. 경복궁과 한복 대여점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먹자골목을 단장해 음식, 문화,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촌에도 갑자기 건물주가 바뀌고, 임대료가 인상됐다. 찾는 이가 늘어난 만큼, 쫓겨난 이도 늘었다. 임대료 인상을 감당할 수 없어 나간 사람들이다.
“시세차익 다다익선”을 외치던 건물주도 궁중족발이 있는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을 통보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97만 원이던 가게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1,200만 원으로 폭등했다. 대체 이 가격은 어떻게 책정된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시장가격’이라고 믿을 뿐이다. 이에 항의하자, 건물주는 궁중족발에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에서 건물주가 이겼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10조 2항)상 전체 임대 기간이 5년을 넘기면 임차인은 계약 갱신 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법조항 때문이었다.
건물주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합법’적으로, ‘투자’해서 이익을 창출한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발생한 시세차익이다. 장사꾼이 물건값을 마음대로 정하듯이, 나도 임대료를 마음대로 정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투자금과 기대수익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당신은 비싼 임대료를 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가라는 소리로 들린다. 시세차익은 시장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상인을 쫓아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법은 건물주가 조물주 위에 군림하도록 용인해주었다.
늦은 밤까지 빛나던 먹자골목의 풍경과 달리 궁중족발은 가게를 폐쇄하고, 입구를 트럭으로 막았다. 지난해 두 차례 강제집행으로 용역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장은 네 손가락이 절단되었다. 그리고 지금 궁중족발을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불복종운동 중이다. 건물주의 약탈에 대해, 상인보다 건물주를 보호하는 데 악용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항의하고 있다. 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따라 개정할 수 있다. 사람을 내쫓는 데 쓰인다면 더욱 바꿔야 한다.
사람들은 사라진 맛집을 아쉬워하며, 연예인의 재테크 성공담에 열광하고, 언젠가 자신도 건물주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투기가 투자로 둔갑하고 약탈이 선망의 대상이 될 때, 쫓겨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다. “궁중족발이 쫓겨나면 우리도 쫓겨난다”는 목소리처럼, 지금 같은 조건에서 나도 너도 늘 쫓겨날 ‘우리’가 될 수 있다. 상인뿐만 아니라,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궁중족발을 지키는 일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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