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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한다고 차별” “운동도 맘껏 못해”… 마음 속 괴물을 깨워

입력
2018.01.05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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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노 싹 트게 하는 교육

“절친끼리도 공부에 방해되면

물건 던지고 소리 지르며 욱해”

사회ㆍ부모의 경쟁 강요가 화 키워

#2

“분노 상담하면 문제아로 찍혀

손가락 깨물며 스트레스 풀어”

학교 무관심에 극단적 자해도

서울 한 고교에서 3년 째 보건교사로 근무하는 이정은(28ㆍ가명)씨는 벌겋게 부어 오른 손을 부여잡고 보건실로 달려 오는 학생들을 종종 접한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유리창을 깨뜨려 부상을 입은 아이들이다. 이씨는 “조금의 잘못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선생님의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은 지식만이 아니라 인성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에 가두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경쟁을 통해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만을 목표로 제시하는 한국의 교육은 아이들의 마음에 화와 분노를 싹트게 한다.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을 더 그르치고, 그것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 모두 자신들을 오직 경쟁으로만 내몰고 있다고 여긴다. 4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6 아동ㆍ청소년 인권실태 설문조사(초4~고3 1만1,699명 대상)’에 따르면 학생 4명 중 1명(25.8%)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주변 친구 등과 차별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일주일에 1~3회 이상 차별을 받아본 적 있다는 학생도 3.5%나 됐다. 친구를 친구가 아닌 경쟁자, 그리고 비교의 대상으로 구도화하고, 이런 환경은 사회를 향한 화와 분노를 낳게 한다. 친구 역시 화를 쏟아내는 대상이 된다. 새 학기 고3이 되는 김인우(18ㆍ가명)양은 “사이가 좋은 친구들끼리도 공부를 할 때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불쑥 학용품을 집어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다”며 “친구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친구를 이겨야 한다는 인식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학교와 학원 뺑뺑이를 돌며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탓에 바깥 활동으로 에너지를 건강하게 분출하기 힘든 현실도 청소년들의 화를 키우는 요인이 된다. 질병관리본부의 ‘2016 청소년건강상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하루 1시간 이상, 주 5일 이상 신체활동을 한 남학생은 5명 중 1명(19.5%), 여학생은 13명 중 1명(7.5%)에 불과했다. 올해 중3에 진학하는 이호석(15)군은 “운동이라고는 체육 시간에 하는 게 전부”라며 “점심 시간에 축구공을 10분 남짓이라도 차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지는데, 이조차 못할 때는 수업시간에 불쑥 화가 치밀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본인이 정해놓은 목표를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부모의 태도도 한 몫을 한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송채연(15ㆍ가명)양은 외국어고 진학을 강요해 온 아버지와 한 달 넘게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외고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가 송양을 볼 때마다 윽박지르고 회초리를 들자, 어느 날 몸싸움까지 벌이며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송양의 담임교사는 “강압적인 부모의 분노는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우울과 스트레스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분노를 외부가 아닌 자신을 향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초교 5학년생인 강은결(11ㆍ가명)군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신의 오른쪽 검지손가락의 피부를 피가 날 때까지 이로 벗겨내는 습관이 들었다. 이상 행동을 하는 강군의 행동을 눈치 챈 교사가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지난해 초 전문상담센터를 찾게 됐다. 강군은 센터에서 “불쑥 화가 나는데 선생님한테 털어놓으면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 손가락을 깨물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이런 분노로 인한 자해는 극단적으로는 사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2015년 9~24세 청소년의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 당 7.2명으로 사망원인 1위를 차지(통계청ㆍ여성가족부의 2017 청소년 통계)했을 정도다.

설령 교사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해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당수 교사들은 관련 사례를 다룰 만한 전문 지식이 없거나 일일이 다 챙겨볼 수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문제 행동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최인영 경기 위센터 전문상담교사는 “우선 아이들의 인성을 최우선시 하는 쪽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하겠지만, 학생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전문상담교사나 기관들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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