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받은 금융 상품 끼워팔기
걸리면 재교육 받거나 과태료
새해부터 직원 7명 규모 인쇄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박모(27)씨는 최근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강사는 20분 남짓 관련 법령과 고충상담 절차 정도만 설명하더니, 갑자기 특정 보험사의 ‘노후대비상품’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고금리 적금 상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61회 납입부터 5% 금리 보장해 드립니다”는 식이었다. 박씨는 “강사가 슬쩍 얘기하기를 이렇게 보험 영업한 지 3년이 넘었다 하더라”며 “법적으로 인정받는 교육인지 어리둥절했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 의무인 점을 이용해 교육 시간에 금융상품 홍보를 끼워 넣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런 교육 방식은 엄연히 불법인데도 많은 사업주가 ‘공짜’라는 이유로 찾고 있는 실정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에 따라 사업주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사업주는 1년에 한 번 예방 교육을 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게 된다. 하지만 민간업체를 이용할 경우 강의료가 30만~40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영세사업자들에겐 부담이다.
일부 민간 교육업체는 영세사업자를 꼬드겨 “우리 업체는 무료다”고 영업한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모(40)씨는 “새해부터 성희롱 예방 교육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팩스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업체 대부분이 대형 금융업체들로부터 후원을 받기 때문에 강의와 함께 ‘금융상품 끼워팔기’를 한다. 직원 10명의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정모(45)씨는 “금융상품 홍보하는 게 불편하지만 강의료 부담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지도점검 결과’에 따르면, 의무 위반비율은 시행연도인 2014년 25.9%에서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며 지난해 37.2%에 달했다. 이 수치 대부분은 아예 교육을 하지 않은 곳이지만, 단속에 걸려 인정받지 못한 곳도 포함돼 있다. 공짜라고 덥석 물었다가 단속에 걸리면 교육을 다시 해야 할 뿐 아니라 과태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사내 규정 등을 설명하거나 정부 인정 기관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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