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신년 인사를 가야 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바른정당과의 통합과 관련된 당내 갈등이 정점에 오른 상황에서 이 여사를 만나는 게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다. 이 여사는 통합 반대파인 동교동계의 상징적 구심이다. 당내에선 이 여사를 ‘패싱’한 안 대표에게 비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4일 DJ의 마지막 비서실장 출신인 최경환 의원은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안 대표가) 통합 문제와 결부해 동교동 방문을 번거롭고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최 의원은 “동교동은 한국 야당 정치의 상징적인 곳”이라며 “이 여사에게 신년 인사를 하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DJ 정신을 계승하려는 정치인에게 이 여사 예방은 빠트릴 수 없는 연례 행사다. 이 여사는 서거한 DJ에게는 생전의 정치적 동반자였다. 동교동계 인사는 “그의 덕담과 메시지는 호남과 구 민주계 지지층에겐 일종의 정치적 세례처럼 여길 정도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여사가 지지한다면 우리도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물론 이를 한껏 활용해왔다. 새해가 되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물론, 국민의당 지도부가 매년 이 여사를 찾아 변치 않는 예의를 보여온 이유다.
그러나 올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4일까지도 이 여사를 찾지 않았다. 아직 예방 일정조차 잡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통합 반대파이자 호남 중진인 천정배 의원과 초선인 최경환 의원, 권노갑 전 상임고문 등은 새해 첫날인 1일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이 여사를 예방했다. 이날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당 지도부가 함께 이 여사를 찾아 세배를 했다. 반면, 안 대표는 같은 날 청년들과 관악산 산행을 했다.
안 대표의 ‘이 여사 패싱’은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다.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연초에 매번 이 여사에게 새해 인사를 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3년부터 2년 전인 2016년까지만 해도 안 대표는 매해 이 여사를 찾아 호남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안 대표가 호남과 선을 긋기 시작했다”는 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6년 예방 때 빚어진 설화도 한 몫 했다. 당시 이 여사와 대화 녹취록이 일부 언론에 공개되는 사달이 발생해서다. 안 대표는 담당 실무진을 교체하고 이 여사에게도 사과한 바 있다. 그런데도 ‘호남 결별설’은 잦아들지 않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안 대표가 이 여사를 찾는다면, 통합 상대인 바른정당 쪽에 ‘안 대표가 아직 호남에 미련이 많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중심의 젊은 정당’을 표방하는 안 대표가 정무적 고려를 해 이 여사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 측은 손사래를 친다. 안 대표의 핵심 측근은 “일정상 예방 일을 잡지 못한 것”이라며 “호남 결별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건 무리다”라고 말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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