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2018년은 제주4·3 70주년이다. 제주도는 이를 기념해 올해를 ‘제주 방문의 해’로 선포하고, 관련 행사들을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다. 지난해 3월 제주지역 100개 단체가 참여한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출범했고, 4월에는 서울에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위원회’도 꾸려져 오는 4월 광화문에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 제주방문의 해 로고를 비롯해 기념사업위원회, 범국민위위원회의 상징 마크에 하나같이 동백꽃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동백꽃은 제주4·3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제주를 대표하는 수많은 꽃과 나무 중 왜 하필 동백일까?
동백과 4·3을 연관시키는 작업은 1992년부터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강요배 화백의 4·3항쟁 기록화 전시 제목이 ‘동백꽃 지다’였다. 그전까지는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의 노랫말처럼 유채꽃을 연관시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주의 4월을 대표하는 유채꽃은 1960년대 환금 작물로 도입된 이후 재배했기 때문에 4·3과는 거리가 멀다는 문제 제기가 없지 않았다. 관련 자료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미군정의 사진기록 등도 공개되지 않았던 당시, 강요배의 기록화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발행한 4·3 관련 자료집마다 그의 그림이 인용됐고, 2008년 개관한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물에도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그림으로 상당 부분 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94년부터 매년 4·3예술제를 여는 제주민예총의 후배 작가들이 강 화백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벌여왔고, 제주의 민중가수 최상돈은 ‘애기 동백꽃의 노래’로 4·3의 아픔과 제주의 정서를 노래하기도 했다.
사실 제주에서는 동백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온전한 상태에서 뚝 떨어지는 꽃송이에서 목이 잘리는 불길한 모습을 연상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동백나무를 심으면 집안에 도둑이 든다는 속설까지 전해져 정원수로 피해야 할 첫 번째 나무로 동백을 꼽기도 한다.
제주에서 겨울에 피는 꽃으로는 동백 외에도 수선화가 있다. 늦가을 잎사귀가 나오고 뒤이어 돌담 옆에서 하얀 꽃을 피우는 수선화는 순수한 느낌이 든다. 이에 반해 동백은 찬바람을 맞으며 빨간색의 꽃을 피워내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리고는 꽃잎이 시들기 전 붉은 꽃 덩어리가 통째로 떨어져 극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그 생명을 연명하는 목련과도 대비된다.
그런 동백꽃을 보며 강요배는 제주의 ‘장두정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장두(狀頭)는 여러 사람이 서명한 소장(訴狀)이나 청원장(請願狀)의 맨 첫머리에 이름을 적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제주에서는 민중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인물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이재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901년 탐관오리 봉세관과 그의 위세에 편승한 신부 및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맞서 민중항쟁을 이끌다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정에서는 ‘이재수의 난’이라 부르지만 민중들은 그를 세상을 구원할 날개 달린 장수로 여겼고, 훗날에는 설화를 통해 영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동백은 장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54년 4·3항쟁이 마무리된 후 2000년 특별법을 만들기까지, 제주4·3은 50년 가까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그런 상황을 고려해 당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원혼들을 강요배는 ‘동백꽃 지다’라는 이름으로 풀었던 것이다.
제주에서 동백은 흔한 나무다. 숲 속이나 하천 변에 자생하는 동백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시내 가로수로도 많이 심었다. 군락을 이뤄 문화재로 지정된 곳도 있는데,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제주도기념물 제10호), 남원읍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제주도기념물 제39호), 남원읍 신흥리 동백나무 군락지(제주도기념물 제27호)가 대표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및 람사르 습지로 더욱 많이 알려진 선흘 동백동산은 20여년생 동백나무 10만여 그루가 숲을 이룬 곳으로, 평지에 남아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로는 제주에서 그 면적이 가장 넓다. 주위에는 근처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해 백서향, 변산일엽 등 희귀식물도 자생한다. 위미 동백동산은 이 마을로 시집와 1993년 작고한 현맹춘 할머니가 황무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동백 씨앗을 뿌린 것이 오늘날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재 약 500여 그루가 남았는데 가장 큰 나무는 흉고 둘레 1.4m, 높이 10m에 달한다. 신흥리 동백나무는 집 주위에 방풍수로 심은 것인데 이후 생달나무, 참식나무, 팽나무 등과 어우러지며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마을에는 감귤과수원 방풍림으로 대부분 동백나무를 심어 겨울철이면 마을 전체가 동백 향기로 넘쳐난다.
겨울철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에서 동백꽃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너머 제주의 아픈 역사 4·3을 함께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4.3 70주년을 맞는 올해 제주도내 공영관광지는 입장료가 무료다. 현대사의 비극 4·3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 나아가 통일 조국의 염원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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