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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올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요

입력
2018.01.03 21:3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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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여정에도 ‘이상한 녀석’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거듭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랑말은 더욱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야기꽃 제공
새해 여정에도 ‘이상한 녀석’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거듭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랑말은 더욱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야기꽃 제공

조랑말과 나

홍그림 지음

이야기꽃 발행ㆍ44쪽ㆍ1만2,000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책 한 권 읽기’는 특히 성과가 미미했던, 지난해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읽다가 만 책이 거처 곳곳에 탑을 이룬 채 갈증과 허기에 속 쓰리던 참의 그 무지막지 졸렬하고 창대한 처방은 서너 번쯤 영혼의 위장을 기름지게 해주었으나, 양가 집안 어른들의 동시 다발 응급 사태로 중단되고 말았다. 삶의 여정이 끝나가는 이, 느닷없는 사고로 몸져누운 이, 읽던 책을 덮는 독자, 다시 길 떠나는 여행자… 독서와 인생과 여행의 공통점은 출발과 여정과 도착에 대한 메타포 외에도 수없이 겹치고 겹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은유가 된 독자: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에서 얘기한 바 단테의 인생과 독서와 그 저작 ‘신곡’처럼 긴밀하고도 돈독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은유하고 펼쳐 보이는 것이다.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새 책을 펼치듯 한 해 분량 여정을 다시 길 떠나는 일이다. 그림책 ‘조랑말과 나’의 주인공도 길을 떠난다. ‘나에게는 조랑말이 하나 있어요./ 나는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라고 주인공이 소개하고 인사하는 첫 장면은 아이와 조랑말의 두상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얼핏 부담스럽거나 유치하게 여겨지지만, 이들이 길 떠나기 전의 여행자답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무결점의 완벽한 존재로서 오직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연출이다.

구름도 새도 저마다 제 자리에서 온전히 날아다니는 맑은 날, 아이와 조랑말은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권총 강도가 나타나 대뜸 조랑말을 겨누고 쏜다. 아이는 씩씩하고 담대하게 사태를 수습한다. 사지를 듬성듬성 꿰맨 조랑말과 함께 다시 나서자니 밤길, 이번에는 난데없이 비행접시가 나타나 조랑말을 해친다. 아이는 이번에도 산산조각 난 조랑말을 수습해 다시 길을 떠나지만 바닷길에서는 악어가, 밤길에서는 귀신이 조랑말을 해친다.

‘가다 보면,/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내 조랑말을 망가뜨려요./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나는 다시/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나요.’가 동일하게 네 번 반복되는 이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의 텍스트는 단호하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내 조랑말은.’ 앞장 선 조랑말과 아이는 뺨에 상처가 났고 조랑말은 길을 나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전진하고 있는 둘의 표정은 더욱 다부져 보인다. 얼핏 헐렁해 보이지만 장면 곳곳에 만만찮은 유머가 탑재된 이 그림책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접고 그림책 동네로 건너온 홍그림이 5년 가까이 작업한 첫 작품이다. 새로운 길을 걷는 자기 투지와 이상을,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문 채 전진하는 아이와 조랑말 모습으로 투사하고 있다.

새해의 여정에도 ‘이상한 녀석’은 틀림없이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거듭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랑말은 더욱 너덜너덜 상처투성이가 되겠지만, 독자이자 여행자인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길 위의 독서’도 다시 시도해볼까.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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