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기온에서 꺼지고 안 켜져
“겨울산에서 조난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배터리 게이트’ 이후 불신 커져
#애플, 2일부터 배터리 교체 시작
사전 안내도 없고 비용까지 청구
공동소송엔 벌써 27만명 참여
영하의 날씨지만 강추위는 아니었던 지난 1일 오후 아이폰6플러스 사용자 정모(50)씨는 한강 둔치에서 새해 슈퍼문을 사진에 담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막 떠오른 커다란 달을 한 컷 찍은 뒤 갑자기 아이폰이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집을 나설 때는 30% 충전 상태여서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켜지기는커녕 방전모드만 표시됐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뒤 전원버튼을 눌렀더니 이번엔 15% 충전으로 나왔다. 2009년 3GS시절부터 8년간 아이폰만 고집한 정씨는 “위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겨울 산행에 겁이 나서 아이폰을 들고 다닐 수 있겠느냐”고 분개했다.
실제로 지난 겨울 신입사원 연수 등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정모(26)씨는 “당시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대다수 동기가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상에서 휴대폰을 꺼내자마자 하나같이 꺼진 뒤 다시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산 정상 온도는 영하 5도 남짓이었다. 따뜻한 품 속에 넣고 한참 지나 다시 켠 휴대폰에는 배터리가 20%나 남아 있었다. 정씨는 “만약 산에서 조난이라도 당했으면 어떡할 뻔 했냐”라면서 “최근 (배터리 게이트) 사태를 보면서 ‘일부러 꺼지게 만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애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했다.
애플이 고의로 기기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가 터진 이후 350만명에 이르는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이 분노하고 있다. 게이트의 핵심인 ‘고의 성능 저하’는 물론, 평소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각종 불편과 애플 서비스센터의 불친절 등에 대한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일부 사용자는 “성능이 떨어진 아이폰 사용자는 위급 상황에 제대로 도움 받지도 못하는 거 아니냐”고 불안해 했다.
아이폰6S를 2년 넘게 쓰고 있는 장모(30)씨는 “기존엔 배터리 교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막아두더니, ‘성능이 떨어진 배터리 효율을 위해 휴대폰 기능 일부를 고의로 막았다’는 설명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불평했다. 지난해 애플 운영체제인 iOS를 업데이트한 뒤 애플리케이션(앱) 시작이 전반적으로 느려졌을 뿐 아니라 카메라는 셔터 버튼을 누른 뒤 1초가량 지나야 ‘찰칵’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장씨는 인터넷 서핑 중에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내리는 것조차 버벅대는 등 심각한 성능저하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이모(26)씨는 “중국에서는 대부분이 모바일 결제를 하기 때문에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 지난해 사용한 지 2년쯤 된 아이폰이 배터리 잔량이 30% 수준에서 순식간에 10%대로 내려가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라며 “이런 식이면 계속 아이폰을 쓰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소비자 불만이 심각해지자 애플 측은 사과문을 올리고 배터리 할인교체정책을 내놓았지만 그마저도 무성의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맞냐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일부 이용자는 “문제의 핵심인 ‘성능저하 기능’은 그대로 두고 배터리만 바꾸라는 애플 측 대응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입장이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2일 교체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조차 게시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었고, 고객센터에 재고가 부족해 헛걸음한 사례도 나와 빈축을 샀다.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3일 기준 애플 상대 국내 공동소송인단에 27만명가량이 참여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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