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도 아팠던 세남매
별다른 장례절차 없이 화장
친모, 묵묵히 담뱃불 현장 재연
“미안해서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고…”
3일 오후 광주 북구 효령동 영락공원 내 승화원 입구. 운구 차량 3대가 줄지어 도착하더니 길이 1m 남짓한 관 3개가 차례로 내려져 화장로로 옮겨졌다. 그러나 여느 운구 행렬과는 사뭇 달랐다. 고인을 안치한 관을 앞세워 뒤따르던 유족들에겐 고인의 영정이 없었다. 대신 한 유족의 손엔 나무로 만들어진 장난감 낚싯대가 들려있었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광주 북구 두암동 L아파트 11층 집에서 엄마 정모(22ㆍ구속)씨의 담뱃불 실화로 숨진 네 살과 두 살 아들, 15개월 된 딸 등 3남매가 평소 좋아했던 것이었다. 유족 측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함께 가져가게 해달라”며 화장장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화마에 목숨을 잃은 이들 3남매는 별다른 장례 절차도 없이 유족들의 서러운 흐느낌을 뒤로하고 또다시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화장로로 빨려 들어간 지 40여분이 지났을까. 한 줌의 재로 다시 돌아온 3남매는 화장장 옆 유택동산에 뿌려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천사’로 불렸던 3남매는 이렇게 세상에서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하늘로 돌아갔다.
3남매의 유해가 흩뿌려지던 시각, 정씨는 3남매의 장례가 치러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경찰과 함께 현장 검증을 위해 화재 현장인 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도 죽었어야 했다”며 식음을 끊기도 했던 정씨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고려해 3남매의 장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두 손을 붕대로 싸고 참혹한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씨는 화재 당일 술에 취해 귀가하는 장면부터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거실로 들어온 뒤 아이들이 잠든 작은방 앞 솜이불 위에 담뱃불을 털어 끄는 것까지 묵묵히 재연했다. 특히 정씨는 불길이 작은방으로 번지던 상황을 재연할 때 경찰이 아이들을 대신해 방에 갖다 놓은 마네킹을 보고 울먹이며 고통스러워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간 수사 내용과 현장검증 내용에 큰 차이점은 없었고, 실수로 불을 나게 했다는 자백 그대로 당시 상황을 다시 보여줬다”며 “정씨가 크게 오열하지 않았지만, 흐느끼며 거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답변하는 등 시종일관 침울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