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익 무시 核에 집중
과학자들 측근으로 보호
자체 기술 꾸준히 확보”
달라진 신년사 패션에도 주목
2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홍콩 영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북한 김정은의 패션에 주목했다. 어두운 인민복 대신 은회색 양복에 색을 맞춘 넥타이, 뿔테 안경으로 말쑥하게 꾸민 김정은의 신년사 영상 속 복장에 담긴 의미를 분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SCMP에 김정은이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의 배지를 차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신감과 안정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북한을 “고갈되고 굶주린 정권”이라고 격하했지만, 일간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핵은 위협이 아니라 현상”이라고 주장한 김정은이 자신만만해 보인다며 ‘성공’ 요인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이 빠른 시간 내에 실제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리라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이라크, 이란, 리비아가 실패의 본보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정은 리더십은 “가난한 독재자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수 없다”는 상식을 초월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등 ‘불량 국가(rogue state)’ 독재자의 핵무장 실패 사례를 분석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정치학자 멀프리 크라우트헤그함메르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이들과 달랐던 김정은의 성공 요인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김정은은 철저히 핵무기 개발에만 집중했다. 반면 이라크나 리비아는 다른 이익도 추구하다가, 핵무기 개발에 실패했다. 후세인은 핵무기 개발이 완수되기 직전인 1990년 쿠웨이트를 섣불리 침공했다 미국 반격을 유발했다. 카다피는 핵개발 추진을 미국과의 양자관계 개선 수단으로 삼았으며, 2003년 최종적으로 핵개발을 포기했다. 북한 관료들은 리비아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했다가 정권이 무너졌거나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수시로 언급하며 ‘핵 개발 포기는 절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둘째, 김정은은 과학자를 보호하고 측근으로 끌어올렸다. 카다피는 과학기술자를 잠재적인 적대 정치세력으로 보고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후세인은 투자는 많이 했지만 과학자들에게 즉각적인 성과를 강요해 오히려 기술 발전이 더뎠다. ‘선군정치’를 표방한 김정일도 과학을 정치의 부속물로 여겼다. 반면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해 고모부 장성택마저 쳐낼 정도로 강도 높은 숙청을 진행했던 김정은은 과학자들만큼은 숙청 대상에서 제외했고 측근으로 성장시켰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김정은 통치 아래 ‘핵 2인조’ 리홍섭ㆍ홍승무와 ‘미사일 4인방’ 김정식ㆍ리병철ㆍ장창하ㆍ전일호 등 신세대 군사과학자들이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을 드러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마지막 요인은 북한의 축적된 기술력이다. 카다피 등이 핵무기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북한은 꾸준히 자체 기술 확보를 시도해왔다. 중국 지원이 줄어든 1960년대부터 북한은 영변 원자력 연구소를 설치했다. 전세계로 퍼져나간 북한 학생들이 개발 자료를 들여왔고 러시아와 동유럽, 중앙아시아의 ‘버려진’ 과학 기술도 암시장을 통해 구매해 자체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정은에 대한 재평가는 미국 내에서 지난해부터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외교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를 통해 김정은을 미치광이나 허풍선이가 아닌 ‘북한 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묘사하며, 강도 높은 제재 가운데서도 북한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기업 문화’를 재편성한 인물로 평가했다. 그는 “이는 김정은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얕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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