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익명게시판 활성화하는 기업들
지난달 20일 SK그룹 인트라넷 ‘톡톡(TokTok)’의 익명 게시판에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TV(IPTV) 상품인 Btv에 관한 의견이 올라왔다. 자녀용 유료 콘텐츠를 구매해 시청하는 경우에도 사전 광고영상을 봐야 하는 게 불편하다는 내용이었다. SK브로드밴드는 의견을 수용해 곧바로 유료 콘텐츠 시청 시 광고영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2010년 문을 연 SK 사내 소통 공간인 톡톡이란 이름은 ‘말하다’는 영어 단어 ‘토크(talk)’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쓰는 곳이라는 의미를 합친 것이다. 이곳에는 3개 익명 게시판이 있는데 ▦회사 내부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는 ‘그룹톡’ ▦SK 그룹이 만드는 상품 등 SK 사업에 대한 제안, 불만 등을 이야기하는 ‘비즈톡’ ▦신변잡기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톡’이 그것이다. SK 구성원들은 이 익명 게시판을 통해 회사 경영에서부터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편사항부터 시부모와 갈등까지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SK 부장급 직원은 “종교나 정치적 주제 중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거나 패거리 문화를 조장하는 극소수 게시 글을 제외하곤 관리자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실명으로 밝히기 어려운 불만을 쏟아내는 배설구 역할을 넘어서 건설적인 양방향 소통과 피드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직장인의 익명 SNS ‘블라인드’와 다르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2009년 사내 소통을 위한 익명 게시판 ‘라이브톡’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라이브톡에는 한 달에도 수천건의 글이 올라오는데 사내 문제에 대한 건의부터 성과급에 대한 불만, 신변잡기까지 내용은 다양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사내 익명 게시판이 활성화돼 있어서 ‘블라인드’에도 다른 대기업보다 삼성전자 방이 늦게 만들어졌다”며 “과거 갤럭시노트7 발화사고 당시 고동진 사장 등 경영진이 대처 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라이브톡에 올라온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등 익명 게시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서도 익명 게시판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달청은 지난해 실명으로 운영되던 사내 게시판을 익명으로 전환했다. 신분 노출의 위험이 줄어들자 게시판에는 회식문화 개선 방안, 조달물품 적정 가격 공급 방법 등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달청 고위 관계자는 “익명이라 해도 애초 우려했던 험담이나 비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조직 구성원의 만족도와 업무성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내에 익명 게시판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점점 늘고 있다. 인사 홍보 노무 관련 부서들은 사외 유명 익명 SNS인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회사 관련 글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고, 사내 익명 게시판 사용을 장려해, 익명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확대하려 노력한다. 과거 대한항공 두산인프라코어 등에서 민감한 기업 내부 사정이 블라인드를 통해 유출됐을 때 일부 기업들이 블라인드 신규 가입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도 대부분 사라졌다.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김모 부장은 “블라인드 가입을 금지하면 이 사실이 다시 블라인드를 통해 퍼지고 뉴스로 알려져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요즘 이를 막는 기업은 거의 없다”며 “경영진도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참고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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