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1만여 대의 차가 이용하는 국도35호선은 경북 안동시 와룡면 태리를 지나는 왕복2차선 도로로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 방향으로 뻗어있다. 문제는 공사를 진행하던 중 거석(巨石)문화유물의 하나인 치마바위와 남근석이 마주보고 있는 지점과 맞닥뜨리면서 시작됐다. 급커브 구간에 남근석이 자리 잡고 있어서 절개공사가 힘들어졌고, 차선책으로 남근석을 피해 우회도로를 개설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땅 소유주 중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서 부지 매입과 묘지 이장이 늦어지면서 5개월이나 허비됐다. 다급해진 시공사는 꼼수를 짜냈다. ‘기공승낙서’를 들고 가서는 ‘나무베기 승낙서’라며 서명을 요청했다. ‘기공승낙서’가 명기된 서류 윗부분을 교묘하게 접는 꼼수를 썼다. 일부 지주들은 승낙서에 자필로 ‘나무베기’라는 글자를 써서 기공승낙과 별개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시공사는 이 승낙서를 들고 공사를 재개했다. 뒤통수를 맞은 주민들이 뒤늦게 강력하게 반발했고, 공사는 중단됐다.
이 와중에 분통 터지는 일이 또 발생했다. 우회도로 예정지에 포함된 묘지 10기에 관한 보상이 해를 넘기도록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주사무소 보상과 관계자는 “10기 가운데 9기는 확인이 됐으나 1기가 확인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보상 집행을 미루고 있다. 땅 소유주는 “공익사업에 최대한 협조하려고 윤달이 있던 8월에 자비로 조상 묘지를 옮겼는데, 서둘러 이장한 게 후회스럽다”면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현재 공사현장은 가관이다. 중단된 현장은 그대로 방치된 채 공사 안내 표지판을 비롯해 토사유출 방지 방호벽 등의 안전조치가 전무하다. 감독기관은 “감리단 책임 하에 시공하고 있어서 잘 모르겠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보상담당자는 “보상업무만 담당하기 때문에 공사와 관련된 질의는 받을 의무가 없다”는 식의 거만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역민들 사이에서 관련 기관과 담당자의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남지방을 책임지는 상부기관은 팔짱만 끼고 있다. 진주, 진영, 대구, 포항, 영주국토관리사무소를 총괄하는 부산지방국토청 고위 간부는 “현장은 감리단 책임 하에 운영하고 전반적인 책임은 영주국토사무소장에게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상.하급 기관모두 책임 전가하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나무베기승낙서로 속여서 서명을 받은 기공승낙서와 관련해서도 “본인들이 서명한 게 맞다. 과정은 모르겠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는 억지 논리만 펴고 있다. 지주 A씨는 “부산지방국토청 고위간부는 정년이 가까워서 퇴직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일하기 싫으면 명예퇴직을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 공공기관들이 주민들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짝짜꿍이 되어서 이래도 되는 건가“라면서 한숨을 쏟아냈다.
억지 주장과 제 식구 감싸기, 갑질에 안전불감증까지, 그들의 ‘내부자놀이’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뒤틀어진 부분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주민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공직기관의 기본 도리가 아닐까싶다.
권정식기자 kwonjs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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