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사정상 여러분과 작별”
단원과 팬들에게 이메일로 알려
‘아르스 노바’ 공연 유료관객 적어
예산 삭감 등 부담감 작용 해석도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57)이 상임작곡가와 공연기획자문으로 일하며 12년 동안 활동했던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을 떠난다. 서울시의회로부터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등 창작 외적인 요소로 퇴진을 결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진 작곡가는 2일 서울시향 단원들과 클래식 팬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2006년부터 몸 담았던 시향을 떠나게 됐다”고 밝혔다. 진 작곡가는 서울시향과 매년 계약을 갱신해 왔으나 지난해 말 임기가 끝난 후 재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진 작곡가가 서울시향을 떠난다는 결정은 갑작스럽게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분께 제때에 소식을 알려드리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인 줄은 알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작년 11월 ‘아르스 노바’(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정기공연)와 베를린필 내한 공연 때 서울을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만나 온 학생들에게도 “지난 수업이 저와 만나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리지 못한 게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공연계에서는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 사이의 갈등 등 서울시향 내홍이 이어진 데다, 서울시의회의 압박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로 한 사람이 오랫동안 활동한 것과 ‘아르스 노바’의 투입 예산 대비 유료관객 수가 적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아르스 노바’ 관련 지출예산은 지난해 2억8,000만원까지 늘었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뤄진 공연 유료관람객은 528명(공연 좌석은 2,036석)에 불과했다.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울시향 예산을 4억원 이상 삭감했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의회의 특혜의혹 제기 등으로 (진 작곡가의) 마음이 절대 편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진 작곡가는 본인 때문에 예산 등에서 더 어려움을 겪을까 우려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아르스 노바’ 프로그램이 11년 간 이뤄 낸 성과가 크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희경 음악학 박사는 ‘아르스 노바’ 10년의 기록을 엮은 ‘현대음악의 즐거움’에서 “진은숙 작곡가는 단순히 작품을 위촉 받고 연주하기보다는 직접 현대음악 연주회를 기획하고 학생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여는 방식으로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의 역할을 받아들였다”며 “서울시향의 경쟁력 비결은 현대음악이라는 평이나 서울시향 유럽 투어의 성공은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 힘입은 바 크다”고 썼다. 또 다른 공연계 관계자는 “진 작곡가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위촉곡 요청도 다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작곡가로서 바쁜 와중에도 서울시향 일은 사명감을 갖고 임해 왔다”며 “서울시향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진 작곡가는 한동안 해외에서 작곡 활동에 힘 쏟을 계획이다. 그는 “이제부터는 더욱 더 창작활동에 몰두해 좀 더 나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서울시향을 떠남으로써 국내 활동을 접으면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한국 음악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진 작곡가는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난 후 2006년까지 20년 간 해외에서 주로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그는 클래식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2004), 아놀드 쇤베르크상(2005),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2010) 등 최고 권위의 상을 휩쓴 데 이어 지난해 10월 세계적 권위의 핀란드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20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울시향은 진 작곡가의 사퇴로 상임지휘자, 대표뿐 아니라 상임작곡가까지 공석이 됐다. 서울시향은 현재 ‘2인의 수석객원지휘자 체제’로 단원들을 이끌고 있다. 서울시향은 자문을 거쳐 선정한 10명 안팎의 외국인 지휘자들을 지난해 말까지 객원지휘자로 초청해 평가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빠른 시일 내 상임지휘자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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