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근무 형태ㆍ시간 변경으로
신체적ㆍ정신적 피로 누적” 판단
/그림 1게티이미지뱅크
쌍용자동차 직원 A씨는 1994년부터 20년간 평택공장에서 주간 프레스 패널 제작업무를 맡아 온 베테랑. 2014년 10월 회사가 주ㆍ야간 교대 근무를 하는 조립라인 인원을 충원하겠다고 공고를 내자 A씨는 교육비 등에 쓸 야근 수당을 벌기 위해 전보를 자원했다. 그러나 당초 원하던 팀에 사번이 빠른 다른 사원이 배치되면서 희망하지 않던 업무에 배치 됐다.
20년 만에 해보는 새로운 일은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차량 배선 정리 작업 등 전혀 다른 성격의 일에 고전하던 A씨는 설상가상 회사 정책 일환으로 업무 외 다른 일까지 주어지자 스트레스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무슨 큰 돈을 벌겠다고 야간 업무를 신청했는지 모르겠다”, “20년 근무한 팀에서 아무 말 없이 나온 게 한이 되네” 같은 메시지를 동료에 보내기도 했다. 전보 6개월 만에 A씨는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아침에 귀가해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했다.
A씨 유족은 “야간근무로 인한 피로누적, 새 업무에 대한 두려움, 매주 변경되는 근로시간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례비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A씨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면서 병원도 ‘돌연사’로 결론 내린 A씨 죽음에 대한 판단이 법원으로 넘어오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김국현)은 2일 “업무와 근무시간 변경 등으로 A씨에게 신체적ㆍ정신적 피로가 누적됐을 것으로 보이고, 달리 사망원인이 될 수 있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통의 근로자들도 20년간 근무해 온 일의 형태나 시간이 바뀐다면 그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사망 당시 47세였던 A씨에게 급성심장사를 발생시킬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지병이나 위험인자가 없었다는 사실도 판단에 참작됐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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